2025년 12월 14일(일)

주한미국대사가 '대전 성심당' 들려 튀김 소보로 사간 감동적인 사연

인사이트Instagram 'sungsimdang_official'


[인사이트] 김한솔 기자 = 전국 빵순이들의 성지가 된 대전의 '성심당'에 주한미국대사가 찾아왔다.


"튀김소보로 맛보지 않고선 대전을 떠날 수 없다"는 말로 '강추'한 이유가 감동적이다.


지난 19일 필립 세스 골드버그(Philip Seth Goldberg) 주한미국대사의 SNS에는 성심당에서 튀김 소보로를 구매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그는 "성심당 사장님의 부모님이 한국 전쟁 당시 미국 배에서 구조된 이후 교회에서 제공한 밀가루 2포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고 설명했다.



성심문화원에 따르면 성심당과 미국의 연관성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심당의 창업주 임길순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 그는 함흥 지역의 1세대 가톨릭교도이자 아주 독실한 신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공산 세력의 종교 탄압이 심해 박해받고 있었고, 1950년 10월 연합군이 흥남으로 들어오면서 다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게됐다. 


그러던 중 그해 12월 연합군 철수 명령이 떨어지고 말았다. 다시 박해 받을 것이 염려됐던 임길순은 그길로 성당 식구 200여 명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고 한다.


인사이트Instagram 'sungsimdang_mainstore'


당시 흥남부두에는 임길순과 같은 피난민들이 수없이 많았다고 한다. 부족한 배에 언제 오를 수 있을 지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그때 임길순과 함께 있던 2명의 젊은 신부가 흰 천에 빨간 십자가를 그린 깃발을 만들어 높이 세웠고, 이를 본 미군이 이들을 발견해 배를 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이 탄 배는 함경도 흥남부두의 마지막 피난선이 됐다. 그 배가 바로 메러디스 빅토리 호였다.


이후 임길순은 거제도를 거쳐 진해에 터를 잡고 생계를 꾸려갔지만 여전히 배고프고 어려운 피난 생활이었다고 한다.


인사이트Instagram 'sungsimdang_mainstore'


결국 서울로 상경해야겠다 결심하고 기차에 오른 임길순 가족. 그런데 그만 그 기차가 대전에서 고장이 나 멈추고 말았다.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 없어 임길순은 대전의 한 성당을 찾아갔고, 성당은 미군에게서 받은 밀가루 두 포대를 나눠 주었다.


이때 임길순의 아내 한순덕은 밀가루로 찐빵을 만들어 팔아 연명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것이 성심당의 시작이 됐다는 이야기다.



미군의 밀가루로 빵을 만들며 불우한 이웃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등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대전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며 대전의 명물로 우뚝 섰다.


대전과 미국의 뜻밖의 연관성에 많은 이들이 "미국 없었으면 성심당도 없다", "미국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