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경기도의 A치킨 매장 주방에서 영업 종료 후 불이 나 매장 전체를 태웠다.<<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제공>>
최근 3∼4년간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관할 지역의 유명 치킨 체인점 주방에서 영업시간 종료 후 원인 모를 화재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현장 조사에서는 담배꽁초나 전기합선, 인화물질 같은 구체적인 원인이 발견되지 않았다. 누군가 일부러 불을 낸 증거도 없었다.
소방당국의 화재조사 결과는 매번 '자연발화', 즉 '저절로 난 불'로 분류됐다.
치킨집 자연발화가 되풀이되는 데 의문을 품은 구리소방서 화재조사관들은 전국의 자연발화 통계를 조회해보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2012년부터 작년 말까지 전체 화재 중 자연발화 비중은 0.47%에 불과한데 치킨집에서는 6.49%나 됐다.
치킨집에서 저절로 불이 나는 빈도가 14배나 높은 것이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3년간 치킨집 자연발화 사례 총 27건 중 80%에 육박하는 21건이 특정 업체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치킨집 자연발화의 비밀은 김판규 소방위 등 구리소방서 화재조사관들의 재현 실험으로 풀렸다.
김 소방위 등은 경기도에서 발생한 치킨집 자연발화가 모두 튀김 찌꺼기를 모아 식히는 용기 주변에서 시작된 점에 주목하고, 치킨 조리 과정을 재현하는 실험을 벌였다.
실험 결과 밀가루 등 튀김옷을 입힌 닭을 튀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찌꺼기 더미 내부 온도가 200도 이상으로 올라가면서 불이 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2013년 4월 경기도의 한 치킨 매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이 타버린 찌꺼기 처리 용기를 옮기는 모습. <<경기북부소방본부 제공>>
튀김 찌꺼기는 소량으로는 불이 나지 않지만 야간에 주문이 밀려 계속 쌓이게 되면 내부에 열이 축적, 온도가 점차 높아져 찌꺼기 성분 밀가루의 발화점(180∼200도)에 도달했다.
특히 튀김 찌꺼기를 곧바로 건져내지 않고 기름 속에 오래 방치할수록 찌꺼기 더미 내부 온도가 더 높이 올라갔다.
김판규 소방위는 6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해당 치킨 업체의 매뉴얼에는 튀김옷을 입힌 닭을 뜨거운 기름에 넣은 후 30초 이내에 찌꺼기들을 건져내게 돼 있지만 일선 매장에서는 이를 지키기 어렵다"며 "튀김옷 찌꺼기들이 오래 기름 속에 머무를수록 수분이 제거돼 자연발화 위험이 커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유독 A치킨 업체 매장에서 화재가 반복되는 원인은 이 업체의 치킨 조리 온도 등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이 제기됐다.
A치킨의 조리 온도는 180도로 경쟁업체들보다 많게는 10도 정도 더 높은 편이다.
그러나 조리 온도 그 자체로는 자연발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며, 찌꺼기 처리를 안전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김 소방위는 강조했다.
김 소방위는 "치킨 매장에서는 찌꺼기를 재빨리 건져내고 다량이 쌓이지 않게 하며, 처리 용기를 스테인리스 등 불연성 금속재질로 해야 저절로 불이 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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