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8일(목)

7살에 '형제복지원' 끌려가 4년 동안 '지옥' 경험한 피해자 여성의 기막힌 사연

인사이트부랑인이 형제복지원에 들어가는 모습 / 진실화해위


[인사이트] 최재원 기자 =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사건 35년 만에 결국 정부의 방관으로 발생한 인권유린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가운데 지금으로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여성의 사연이 전해졌다. 


한겨레21에 따르면 지난 1983년 7살에 불과했던 피해자 이혜율 씨는 5살 남동생과 대전에 있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에 깜빡 잠이 들어 부산까지 갔다가 거기서 형제복지원 차량에 실려가면서 강제 수용 생활이 시작됐다.


이씨는 시설에 지내며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렸다. 하루하루 고된 노역을 하면서 날마다 쏟아지는 매 타작을 견뎌야만 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그는 시설에 갇혀 있던 4년 6개월간 외부로 딱 한 번 나갈 수 있었다. 그마저도 열병에 걸려 병원에 한 번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딱 한 번, 담에 밧줄을 걸고 올라가는 방식으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신발이 고무신이었던 탓에 계속 미끄러지면서 탈출에 실패했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알려진 어느 날 이씨와 그의 동생은 다른 복지원으로 가게 되며 강제 구금 생활은 끝났다.  


그러나 고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씨는 형제복지원에 갇혀 지내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밴 생각과 행동이 지금까지도 그에게 고통이 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이씨와 같은 피해자를 양성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첫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24일 서울 중구 남산 스퀘어 빌딩에서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진실화해위)는 제39차 위원회를 열고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라고 규정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5년 만에 국가 기관이 처음으로 '국가 폭력에 따른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정한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 등에서 새로 확인한 통계 등을 토대로 1975에서 1988년까지 형제복지원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657명이라고 밝혔다.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5명이 늘었다. 진실화해위는 일부 사망자의 경우, 구타 등에 의한 사망이 '병사(病死)'로 조작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 사건은 경찰 등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이들의 허가와 지원, 묵인하에 부랑인으로 지목한 불특정 민간인을 적법절차 없이 단속해 형제복지원에 장기간 자의적으로 구금한 상태에서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 실종 등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 등을 불법감금하고 강제 노역을 시키며 각종 학대를 가한 대표적인 인권 유린 사건이다.


형제복지원은 약 3천 명을 수용한 전국에서 가장 큰 부랑인 수용시설이었으며 길거리 등에서 발견된 무연고자들은 물론 무연고 장애인·고아·가족이 있는 일반 시민·어린아이들까지 이곳에 끌려온 것으로 알려진다.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끔찍한 만행은 1987년 3월 탈출을 시도한 원생 1명이 직원의 구타로 사망하고, 35명이 집단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세상에 드러났다.


검찰은 1987년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을 수사해 불법감금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은 1989년 7월 정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박 원장은 건축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의 형을 받는데 그쳤다.


오히려 박 원장은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부랑아 퇴치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과 1984년 각각 국민포장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으며 이후 2018년 7월에서야 그에 대한 훈포장이 박탈됐다.


이후 문무일 검찰총장이 2018년 11월과 2019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박씨의 혐의에 대해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형제복지원의 '인간 존엄성' 침해를 인정하면서도 법리적으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