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45년 전 오늘(13일) 봉제 노동자이자 노동 운동가였던 전태일은 온 몸이 불에 휩싸인채 이 같은 말을 외쳤다.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서울에 올라와 청계천 공장에서 일하게 됐다.
이후 전태일은 재단사로 일하던 중 재단 보조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봤고, 강제 해고된 여공을 돕다가 함께 해고됐다.
그러던 중 '근로 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된 전태일은 수시로 노동청을 방문해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전태일은 자신들의 행동이 '사회주의 조직' 활동이라고 낙인 찍힌 채 방해를 받고 계속해서 실질적인 근로 기준법이 지켜지지 않자, 죽음을 통해 이를 알리기로 결심했다.
via EBSCulture (EBS 교양) / Youtube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청계천 앞에서 벌이던 노동자 집회가 고용주 측의 패거리에 저지당하자 평화시장 뒷골목에서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친구에게 성냥을 그어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는 전태일의 뒤에서 불을 붙였고,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화형식' 과 함께 그 자신도 불 속에서 뛰어들었다. 이후 전태일은 국립의료원으로 옮겨졌으나 돈이 없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다.
전태일은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에게 "어머니, 내가 못 다 이룬 일 어머니가 이뤄주세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이날 밤 세상을 떠났다.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한 말은 "배가 고프다.."였다.
이러한 전태일의 분신 이후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환경은 사회적 현안으로 대두됐고, 노동자들은 청계피복노조를 비롯한 노동조합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운동했으며 전태일은 지금까지 한국 노동운동계의 기념비적인 인물로 추모되고 있다.
한편, 아들의 유언을 가슴에 새기며 노동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이소선 여사는 지난 2011년 7월 심장마비로 의식불명에 빠졌다가 같은 해 9월 3일 아들의 곁으로 떠났다.
김예지 기자 yeji@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