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8일(목)

공포영화 마니아 유재석과 핼러윈데이를 즐기는 청춘들의 관계

via xu_jinnng, oha19 / Instagram 

 

최근 친구의 생일 축하를 위해 한강진 역 근처를 방문했다가 뜻하지 않게 이태원 핼러윈데이 축제를 구경하게 됐다. 

 

발 디딜 틈이 없어 떠다니다시피 하다 겨우 한 사케집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2층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그야말로 진귀했다. 

 

엄청난 인파가 조커처럼 얼굴에 상처 분장을 하고 그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웃고 있었다. 

 

인파 때문에 꼼짝도 못하는 차를 보며 “내일 새벽까지 못나가요”라고 즐겁게 놀려댔고 여기저기서 호각 소리가 들렸다. 수많은 풍선이 하늘로 날아갔다. 

 

그렇게 예기치 못하게 만난 핼러윈데이 축제, 당장 다음 날도 당직이다 뭐다 하는 이유로 금방 집에 돌아갈 운명이었지만 만족스러웠다. 

 

이런 특이한 광경을 그저 바라 보는 것만으로도 매일같이 정상적이며 반복적인 일상을 견뎌야 하는 중압감이 해소됐기 때문이다. 

 

via hwang.yunsung, tigerjs.kim / Instagram 

 

다음 날이 되자, 온라인에는 핼러윈데이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와 댓글이 쏟아졌다. 

 

축제 후 쓰레기 문제, 바가지 물가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됐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대주의’라는 비판이었다. 

 

기사마다 “우리가 언제부터 단옷날도 안 챙기면서 핼러윈데이를 챙겼냐”며 축제를 즐긴 이들을 생각없는 젊은이들로 비하하는 댓글이 달렸다. 

 

다른 한편에서는 "누가 무슨 문화를 즐기든 무슨 상관이냐"며 조금은 극단적인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맞서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핼러윈데이 축제에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부정적인 면모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쏟아진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바보거나 사대주의에 물든 사람들도 아니다. 

 

via MBC '무한도전' 

 

이런 과정들을 보며 꽤 오래 전에 한 무한도전 ‘정신 감정’ 특집이 떠올랐다. 당시 섭외된 정신과 전문의는 유재석에 대해 "흠을 잡을 수가 없었다"며 운을 뗐다. 

 

하지만 그는 "사회적으로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는 데는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며 "이런 사람들은 뒤에서 음습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당시 무도 멤버였던 노홍철은 "맞아. 이 형 맨날 쏘우 같은 19금 공포영화만 보잖아"라며 놀랍다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사회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삶’을 영위하는 것과 그 이면에 함께 자리하는 ‘음습한 면’은 모두 유재석이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특징이다. 

 

그리고 유재석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사회적으로 내놓는 자아와 그렇지 못한 자아가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생기는 괴리감. 특히 규격화된 인간상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사회에서 이런 괴리감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도 이런 괴리감을 극복하지 못한채 남들이 없는 곳에서 자신의 욕망을 그릇된 방법으로 풀면서 생겨나는 것인지 모른다. 

 

via ggi_150801, rira421 / Instagram 

 

사회가 제시하는 ‘정상적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깎고 규격화시키다 보면 누구라도 가끔은 이유 없이 미칠 것 같을 때가 있을 것이다. 

 

이상한 분장을 하고 거리로 나와 함께 웃고 노는 핼러윈데이같은 축제는 이런 감정을 양지에서 분출하게 하는 정상적이고 건전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태원에서 본 청춘들은 한편으론 건강해보였고 한편으론 이태원이란 공간이 미어터질 만큼 우리에겐 축제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태가 무엇이 됐든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축제가 필요하다. 

 

생각해 보면 애국심을 불태우게 했던 지난 2002년 월드컵이나 이태원, 홍대 등지에서 열리는 핼러윈데이 축제나 본질적으로는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고유하게 창조한 축제 문화가 부족한 것은 분명 아쉬운 일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열패감이 많은 탓에 그저 축제일뿐인 이벤트를 마음껏 즐기는 것조차 어려워졌는지도 모른다.

 

청춘들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고 일상을 지탱할 활력을 제공하는 게 축제의 본질이라면 그것이 핼러윈데이인지 강강술래인지가 그닥 중요해 보이진 않는다. 

 

정은혜 기자 eunhye@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