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월)

'3.1운동' 직접 목격하고 울컥해 조선인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앞장선 일본인 여성

인사이트가네코 후미코 / YouTube 'JTBC News'


[인사이트] 임기수 기자 = 3월은 우리 민족을 억압하는 일본에 항거한 날을 기념한 3.1절이 있는 뜻깊은 달이다.


올해는 3.1절이 101주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다. 101년 전 조선 곳곳에서 수 백만의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억압된 한을 쏟아냈다.


이때 조선인들의 모습을 본 16세 일본이 소녀는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훗날 이 소녀는 일왕에 반대하는 아니키스트로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앞장서게 된다.


인사이트영화 '박열'


이 소녀의 정체는 바로 박열 의사의 아내로 알려진 가네코 후미코다.


1919년 3.1 운동 당시 조선인들의 독립의지에 크게 감명받은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으로 돌아와 여러 사상가와 교우하다 박열을 만나게 된다.


그는 필명 박문자(朴文子)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옹호하고 일제의 탄압 정책을 비판하였다.


카네코 후미코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모님들이 서로 자신을 키우기를 거부해 출생 신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인사이트카네코 후미코와 박열 / YouTube 'JTBC News'


부모님의 불화로 인해 가네코는 조선에 있는 고모 집으로 가게 됐다.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조선에서도 그를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고모와 함께 살았던 가네코의 할머니는 그를 학대했다. 어린 카네코는 그 학대와 외로움을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했다.


그러던 중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났다. 거리로 뛰쳐나온 조선인들은 모두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울분에 찬 그들의 목소리와 표정 하나하나를 보며 가네코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버려져 온갖 학대를 견뎌야 했던 자신의 모습과 일제에 억압받는 조선인들의 처지가 너무나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조선인들의 독립에 대한 의지와 마음을 알게 된 가네코는 그때부터 일제의 폭력과 무자비함을 비판하고 저항하기 시작한다.


인사이트영화 '박열'


그렇게 독립운동을 하던 박열 열사와 사랑에 빠지게 된 그는 남편과 함께 조선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다.


가네코는 박열을 도와 의열단과 연계한 폭탄 반입을 추진했다. 이후 일본 경찰에 체포돼 대역죄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기도 했다.


재판을 받을 당시 가네코는 남편 박열과 함께 한복차림으로 나타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네코는 결국 1923년 7월 23일 차디찬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현재 그녀는 지금 경상북도 문경에서 조선인 남편 박열과 함께 잠들어 있다.


카네코 후미코는 지난 2018년 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을 맞이해 생을 마감한 지 92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됐다.


비록 일본인이었지만,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일제를 향한 저항심은 어느 조선인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