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월)

월 80만원 받고 '청소일' 하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유관순 열사 후손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인사이트] 디지털뉴스팀 = 103년 전 오늘인 1919년 3월 1일, 대한민국에는 일제의 폭압에 맞선 국민들의 "대한독립 만세" 외침이 울려 퍼졌다.


당시 독립운동가는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나서 빼앗긴 주권을 찾아오기 위해 목 놓아 외쳤다.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만든 노력은 쌓이고 쌓여 1945년 8월 15일 조국 광복의 빛을 발하는 초석이 됐다.


이 과정에서 유관순 열사의 역할 또한 큰 힘이 됐다.


인사이트사진=인사이트


유관순 열사는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고향 천안에서 독립운동 선봉장 역할을 맡았다. 그런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일본 경찰에게 잡혀 서대문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갖은 고문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압력에 굴하지 않았던 유 열사는 끝내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이 때문에 그의 죽음은 대한민국 국민들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현재는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추대돼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유 열사의 후손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인사이트유관순 열사 / 뉴스1


3년 전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유 열사의 후손인 70대 여성은 현재 청소부 일을 하며 겨우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2019년 기준으로 월급은 고작 80~90만원 수준이었다.


당시 이 후손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 했다. 유 열사에게서 누가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유 열사 조카 손녀와 조카도 매점 직원, 광복회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를 본 많은 이들은 그들의 처우에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편 지난달 27일 백범 김구 선생의 장손 김진씨를 포함한 독립운동가 후손 63명이 3·1절을 앞두고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날 이들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실종될 위기에 놓여 있고, 국가의 헌법이 무너지려 한다.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 공정하고 정의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자 대의"라고 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