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월)

10년 전 초6 제자들과 "22년 2월 22일에 만나자" 약속한 선생님이 학교서 본 풍경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SBS '닥터스'


[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여보, 10년 전에 제자들하고 '2022년 2월 22일 2시 22분 학교 정문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과연 몇 명이나 올까?"


이 말을 들은 아내는 최근 사고를 당해 다리에 깁스를 한 남편을 말렸다. 그 몸으로 어디를 가냐고,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약속 아닌 약속을 지금의 23살 청년들이 기억은 하고 있겠냐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첫 제자였던 아이들을 늘 가슴속에 담고 살아온 선생님은 희망을 품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다녀오고 싶다고 했고 허락을 받았다.


며칠 전부터는 혹여나 실수하지 않기 위해 졸업앨범을 꺼내 이름을 되뇌며 연습했다.


그리고 어제(22일) 당시 근무하던 초등학교로 향했다. 한쪽 발에는 목발을 의지한 채. 2022년 2월 22일 오후 2시 22분 그가 맞이한 풍경은 어떠했을까.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KBS2 '학교 2013'


선생님은 약속 시간보다 22분 앞선 2시에 학교 정문에 당도했다. 1분을 1시간처럼 느끼며, 정문 앞에 붙은 선거 벽보를 하나하나 찬찬히 읽었다.


그러던 그때 선생님의 눈에 키가 조그마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정문에 붙은 학교 명패를 뒤로하고 셀카를 찍는, 마치 인증샷을 찍는 듯한 모습이었다.


선생님의 머릿속에 "왔다!"라는 단어가 스쳤고, 목발을 짚은 채 뛰기 시작했다. 10m 정도를 뛴 뒤 마음이 앞서 먼저 이름부터 불렀다.


그는 "이름을 부르니 이 녀석도 저를 알아보고 '선생님' 외치며 다가왔다"라며 "제자가 딱 한명 온다면 아마 '이 아이일 것'이라고 생각한 아이였다"라고 말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SBS '아무도 모른다'


이어 "숙제를 내주면 가장 꼼꼼하게 해왔던 아이여서 예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이였다. 2년 전 연락을 한 뒤로 한 번도 왕래가 없었는데 오늘 나타났다"라고 덧붙였다.


선생님은 이외에도 세 명의 제자를 더 만날 수 있었다. 두번째 제자는 첫번째로 만난 제자의 베프였고, 세번째 제자는 10년 전 학급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만들 정도로 활동적인 제자였다.


모두 여제자만 보게 돼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이내 그 이유를 알게 돼 속도 쓰렸다고 한다. 남자 제자들은 대부분 군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한 남자 제자가 올해 5월 입대가 예정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MBC  '휴먼 다큐, 사람이 좋다'


선생님은 오랜만에 만난 제자들과 세상 사는 이야기, 현실적인 이야기, 결혼의 어려움 등등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요즘 청년들의 아픔도 다시 알게 돼 마음도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한 달 뒤 다시 모이기로 약속을 잡았다"라며 "10년 전 약속을 기억하고 자리에 나와준 녀석들에게 근사하게 대접할 계획"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10년 전 아이들과 한 약속을 지켜 마음속 돌덩이를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라며 "나온 아이들, 연락만 된 아이들, 연락이 없어 보지 못한 아이들 모두 제자들이기에 모든 녀석들이 그리워진 날이었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오늘 밤은 정말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