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 주연의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흥남철수 장면 / 영화 '국제시장'
[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한반도 전 영토를 피로 물들인,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
대한민국은 전쟁 초기 북한에 밀렸지만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기세를 역전시켰다. 1950년 10월 1일에는 38선을 돌파한 데 이어 압록강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중국이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공군을 투입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연합군은 중공군의 병력과 추위를 감당할 수 없어 12월 8일 퇴각을 결정했다. 이른바 '흥남 철수'의 시작이다.
실제 흥남철수 당시 모습 / 전쟁기념관
영화 '국제시장'
12월 15일 미국 1해병사단을 필두로 약 10만명에 이르는 연합군이 흥남에 집결했다. 순탄하게 철수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변수가 발생했다.
흥남에서 살기 위해 연합군을 따라온 10만명의 피난민도 탈출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백일 당시 1군단장 등은 자신들과 함께 철수하려는 피난민을 외면할 수 없었다.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에게 "군 장병들 위주의 철수 작전을 변경해달라"고 설득했다.
긴 설득 끝에 "대규모의 시민을 군함에 태워 탈출할 수는 없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던 미군 관계자들은 피난민과 함께 철수하는 것을 승낙했다.
전쟁기념관
특히 군수 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투입됐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 호(SS Meredith Victory)는 25만t에 달하는 화물을 버렸다.
미군의 희생 덕분에 대한민국 제1군단과 미국 제10군단의 장병 10만명을 비롯해 차량 1만 7천대, 피난민 약 10만명, 35만t의 군수품은 안전하게 동해상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당시 전쟁의 규모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실제 흥남 철수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있었던 덩케르크 철수 작전과 더불어 현대전에서 가장 성공한 양대 철수작전으로 불린다.
현재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에는 10만 명의 인명을 구한 영웅 6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영화 '국제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