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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무함마드 깐수(Muhammad Kansu)라는 레바논 인물이 들어와 단국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외국인이었던 그가 박사 학위를 받는데 까지 걸린 시간은 5년, 5년이란 짧은 시간에 박사 학위를 받을 만큼의 뛰어난 한국어 실력을 갖췄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신라 시대 인물인 처용이 아랍상인이란 주장을 가장 먼저 펼친 인물이기도 하다. 단 5년 만에 한국 역사학계를 뒤집어 놓았고, 타국에서 열정적으로 공부해 성공한 그의 이야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주변인들과 그의 제자들 또한 깐수 교수를 '자상한 간디 교수'라며 따랐다. 쾌활하고 밝은 성격으로 학교에서도 인기있는 외국인 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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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하던 깐수 박사, 하지만 1996년 7월 3일 그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체포되게 된다.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이후 드러나기 시작한 깐수 박사의 진짜 정체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나이, 이름, 출생지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
10년간 남한에서 교수로 활동한 깐수 박사는 진짜 정체는 정수일이란 이름을 가진 북한의 '간첩'이었다.
그는 1984년부터 라디오를 통해 북한의 지령을 수령,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해 북한으로 보내고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4차례 북한에 밀입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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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이었던 그는 이국적인 외모를 타고난 탓에 무함마드 깜수라는 인물로 위장했고, 생활방식도 무슬림들과 똑같이 했다. 한국에서 결혼한 아내에 따르면 잠꼬대도 아랍어로 했다고 한다.
외국인으로 행세하던 그는 체포 후 아주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해서 수사관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재판에서는 사형이 구형됐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단순한 언론 보도 내용을 북한에 전달해 국가 기밀을 유출했다고 보기 어렵고, 그동안의 연구 성과와 전향하겠다는 그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였다.
실제 그의 스펙은 엄청나다.
본래 6개국어를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는 간첩 활동을 위한 거짓말이었고, 실제로는 한국어를 포함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영어, 아랍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페르시아어, 말레이시아어, 타갈로그어 등 12개국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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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아랍 지역과 한국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던 한국에서 그의 연구 결과는 역사학계에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제일 큰 실수'라는 말도 나왔다. 군사나 외교 전문가가 아닌 역사학자를 간첩으로 보낸 것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 북한이 천재 한 명을 공짜로 남한에 퍼줬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분단시대의 불우한 천재학자", "문명교류학의 세계적 권위자"가 그에게 붙은 수식어다.
2008년 석방 이후에는 한국문명교류연구소를 설립해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86세로 고령이지만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