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월)

조선의 경제 흔들 만큼 엄청난 '갑부'였는데도 나라 위해 목숨 바친 독립운동가

인사이트이승훈 선생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91년 전 오늘(9일) 67세의 독립운동가 이승훈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노령이기도 했지만 오랜 수감 생활로 몸이 약해진 탓이었다. 


일본 총독부의 기간지에도 '위대하고 쓰라린 삶을 산 그 인생'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하지만 이승훈 선생은 마지막 가는 길 또한 순탄치 않았다. 선생의 유언에 따라 그의 시신은 의과대학에 기증됐으나, 전국의 학생들이 그를 추모할 것을 두려워한 일본은 6개월 동안 시신을 내놓지 않았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본래 엄청난 부자였다. 1896년 소 한 마리에 1만 냥 하던 시절, 선생이 가진 자본금은 70만 냥에 이르렀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조선의 경제가 흔들릴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tvN '미스터션샤인'


성공한 사업가였던 그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자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이 벌어들인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해야 나라에 힘이 생긴다며 초등학교인 강명의숙, 중등학교인 오산학교 등을 설립했다. 1910년 나라를 완전히 빼앗겼을 때는 일본 몰래 독립군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적발돼 유배를 떠나기도 했다. 


이후 감옥까지 끌려갔으나 이승훈 선생은 조국 독립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 지도자와 함께 3·1운동을 이끌다가 다시 투옥된 선생은 "앞으로도 어디까지든지 조선의 국권회복운동을 할 것인가"란 일본 검사의 물음에 "그렇다. 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어디까지든 하려 한다"고 답했다. 


인사이트오산학교의 후신인 서울 오산고등학교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사이트이승훈 선생이 투옥된 105사건 / 한국학중앙연구원


일본은 보복으로 선생이 세운 오산학교에 불을 질러 폐교시키는 등 독립운동을 방해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학교를 세워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다. 


고당 조만식, 단재 신채호, 횡보 염상섭 등 당대를 대표한 지식인들이 오산학교의 선생님이었으며 시인 김소월, 신사 참배를 거부한 목사 주기철, '소'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 등 걸출한 인재들을 배출했다.


선생은 이런 제자들과 교사들을 위해 겨울이면 얼어붙은 재래식 화장실의 대변을 손수 깼다고 한다.


학교를 운영하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이승훈 선생은 3번에 걸쳐 무려 10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고, 한때 조선에서 손에 꼽히는 부자였지만 말년에는 불우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사이트일본의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이승훈 전후면 / 한국학중앙연구원


그의 마지막 유언은 "내가 죽거든 뼈를 흙 속에 묻어 공연히 썩게 하지 말고 학생들이 표본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하라, 이것이 나라에 이바지하는 내 마지막 일이다"였다. 


선생이 숨을 거둔 뒤 6개월 뒤인 11월 5일에 영결식이 거행됐지만, 일제는 선생의 비문을 정으로 쪼아 없애고 비문이 없는 묘비마저도 땅에 묻어버렸다. 


오산학교 졸업생 중 한 명인 사상가 함석헌은 선생을 "조선의 촛불이다"며 "진정한 조선 사람을 고른다면 선생은 제일 먼저 뽑혀야 할 인물이다"고 평했다. 


정부는 1962년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