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년 전 오늘은 일본 경찰이 교회에 한국인 가두고 불질러 '학살'한 날이다

인사이트제암리 교회 학살 사건 재연 현장 / 뉴시스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초록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4월, 1년 중 가장 상쾌한 날씨기도 하다. 


102년 전 오늘 이렇게 아름다웠던 날에 경기도 수원군 향남편 제암리(현 화성시 향남읍)에서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군경이 3·1운동의 보복행위로 제암리에 살고 있던 민간이 20여 명을 학살하고 민가 30여 호를 불태운 참변이 일어난 것. 


1919년 4월 15일 오후 일본군 보병 중위 아리다 도시가 이끄는 보병 11명과 순사 2명은 제암리에서 강연한다며 기독교와 천도교 신자 20여 명을 교회에 모이도록 했다.


인사이트제암리 교회 학살 사건 재연 현장 / 뉴시스


인사이트제암리 교회 학살 방화 후 현장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주민들이 교회에 모이자 이들은 출입문과 창문을 굳게 잠갔다. 이어 총칼로 안에 있는 사람들을 학살한 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교회를 불태웠다. 


뜨거움을 참지 못해 교회 안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이들도 있었으나 일본군은 이들을 향해 발포하거나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한 여인은 품에 있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창문 너머로 아이를 던졌지만, 일본 군인은 그마저 총검으로 찔러 잔혹하게 살해했다. 


제암리에서 23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일본 경찰과 군인들은 고주리로 달려가 일가족 6명을 만세 운동 주도자로 몰아 총살했다. 


인사이트스코필드가 찍은 제암리 교회 현장 사진 / 뉴스1


인사이트1982년 제암리 순국선열23위 합동 위령제 / 뉴스1


4월 5일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제암리 교회에서 주도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묻힐 뻔한 이 사건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이며 선교사였던 영국인 스코필드에 의해 알려졌다. 


전 세계 곳곳에서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주도자 아리다 중위에 대한 재판은 '무죄'로 끝이 났다. 


오늘날 제암리에는 이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기 위한 순국 유적지가 자리 잡았다. 


돌아오는 이번 주말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작은 농촌 마을 제암리를 찾아 그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또한 의미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 ⓒ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여러분의 제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세상을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인사이트의 수많은

기사들은 여러분의 제보로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