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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현관문에 몰래 '검은 봉지' 걸어놓아 아래층 신혼부부 울린 위층 할아버지

한 여성이 11년 전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 하면서 만나게 된 이웃 할아버지와 관련한 사연을 전해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11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온 한 부부는 803호 할아버지를 잊지 못한다. 


평소 떡 만들기를 좋아했던 아내 은서(가명) 씨는 직접 콩가루떡과 시루떡을 쪄서 이웃들에게 이사 기념으로 선물했다. 윗층 803호에 살던 할아버지도 떡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요즘 이런 집 흔치 않은데"라며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은서 씨가 떡을 다 돌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현관문 손잡이에는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걸려 있었다. 안에는 정성스러운 글씨로 '고마워요'라고 적힌 쪽지와 작은 호박 두 개와 호박잎이 들어있었다. 


은서 씨는 803호 할아버지의 선물이란 걸 단번에 알았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사진=인사이트


은서 씨가 집에 혼자 있던 어느 날 오후, 윗집 803호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은서 씨는 곧장 올라가 봤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곧장 119에 신고해 구급대원들과 803호의 문을 뜯고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고 할머니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할머니를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한 뒤, 은서 씨는 할아버지를 기다렸다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위험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할아버지는 한참이나 은서 씨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그날부터 할아버지는 새벽마다 은서 씨 부부의 차를 깨끗하게 닦아 놓았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은서 씨 부부는 차를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도 보았지만 803호 할아버지는 귀신같이 찾아내 차를 닦았다. 


남편이 할아버지에게 "주말마다 세차하는 게 제 취미인데 할아버지가 해 버리시면 제가 심심하다"고 한참을 떼쓴 후에야 할아버지는 새벽 세차를 멈췄다. 


대신 은서 씨 현관 문고리에 검은 봉지가 걸리는 날은 점점 늘어갔다. 


검은 봉지에는 각종 채소와 야채는 물론 은서 씨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군것질거리, 옥수수, 요구르트 등이 매번 다르게 담겼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그렇게 은서 씨와 할아버지가 좋은 이웃사촌으로 지낸 지 3년쯤 되던 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803호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찾아와 모시고 살기로 했다. 


이사 가기 일주일 전, 803호 할아버지는 은서 씨 집 초인종을 눌렀다. 마지막 인사를 위해서였다. 


은서 씨가 "너무 아쉬워요. 저희 친정아버지보다도 아버지처럼 자주 뵙고 따랐는데"라고 했더니 할아버지 또한 "나도 아들만 둘인데 막내딸 생긴 기분이어서 좋았어"라며 손에 쥔 물건을 건넸다. 


오래된 옥가락지와 은거북 가락지가 은서 씨 손 위에 쥐어졌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은서 씨가 깜짝 놀라 이런 걸 받을 수 없다고 하니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생전에 쓰던 유품을 정리하다가 서랍 틈에서 발견했다며 "할망구가 막내딸 생겨서 주라고 남겨놓은 건가 보다 싶어서 가지고 왔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 받는다고 하다가 나 기운 빠져서 쓰러지면 책임질 거야?"라고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할아버지가 떠나가고 새로운 신혼부부가 이사를 왔다. 


803호의 새로운 주인이 된 부부의 아이는 벌써 5살이 됐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아직도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가 인사를 할 때면 할아버지가 떠오른다고 전한 은서 씨는 "803호 할아버지 잘 계시죠? 덕분에 많이 행복했어요.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세요"라며 안부를 전했다. 


지난 2020년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전해진 해당 사연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느라 정작 이웃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각박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전하는 건 TV 영화 속 히어로가 아닌 은서 씨가 '천사'라고 표현한 803호 할아버지의 푸근한 검은 비닐봉지처럼 따뜻한 마음이라는 걸 깨닫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