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인사이트] 유진선 기자 = "난 진짜 쓰레기였고 말종이었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버지를 떠나보낸 '페미니스트' 딸은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쏟았다.
A씨는 대학교 시절 선배의 권유로 페미니즘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는 "당시 아버지와 극심한 갈등에 있었던 나는 남성 혐오적 발상과 혐오 발언들에 빠져들며 그것을 합리화했고, 중독이 되고 말았다"고 했다.
A씨는 그렇게 대학 생활 3년 내내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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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작성한 글 일부 / 온라인 커뮤니티
연락 없는 딸이 야속할 만도 했지만 아버지는 딸의 자취방 앞에 용돈이며 반찬거리들을 놓고 가곤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A씨는 병원으로부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려간 A씨는 자는 듯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피 역류와 구토로 탈진을 반복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수개월 동안 지켜본 A씨는 평생 살며 흘릴 눈물을 전부 흘렸다.
A씨는 "생각해보면 엄마도 형제도 없었던 내게 아버지는 유일한 가족이었는데, 아버지가 뭘 잘못했다고 그랬는지 철이 없었다"고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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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작성한 글 일부 / 온라인 커뮤니티
그는 "유학을 보내 주지 않았다고, 용돈을 더 주지 않는다고 들었던 반감밖에 없었다"며 "난 진짜 쓰레기였고 말종이었다"고 말했다.
A씨는 "페미니즘으로 실질적인 이득을 보는 건 관련 작가와 패널, 미디어 운영자 등 일부일 뿐이고 일반 여성들은 그저 그 소수에게 돈을 쓰며 사회적으로 고립된다"고 지적했다.
페미니즘 동아리 회원들의 행동도 A씨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3년 동안 함께 활동하며 나름 끈끈한 관계라고 생각했지만, A씨 아버지의 장례식에 그들 중 누구도 참석하지 않았다.
A씨는 "나는 지금까지 여성인권 운동이 아닌 남성 혐오를 했다는 걸 그 때 확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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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A씨를 위로하러 찾아와준 건 페미니즘을 하느라 그간 멀리하고 무시했던 지인과 친구, 선후배들이었다.
그는 "이게 내가 3년 동안 외면하려 했던 슬픔이었고 아버지였으며 세상의 따뜻함이었다"고 말했다.
A씨는 과거 자신이 상처를 줬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사과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해야만 내가 지은 죄들과 사람들에게 줬던 상처를 아버지에게 사과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