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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디지털뉴스팀 = 83년 전 오늘(10일) 도산 안창호 선생은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안창호 선생이 경찰에 체포됐던 이유는 한 소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질 당시 김구 선생은 상하이에 있던 독립운동가들에게 조심히 행동할 것을 미리 통보했지만, 선생은 이를 전달받지 못했다.
선생은 이날 한 소녀와의 약속을 위해 집을 떠났고,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미리 알리려 했던 전령과 길이 엇갈리고 말았다.
독립기념관
도산 안창호 / Wikipedia
선생과 약속을 한 소녀는 이유필이라는 동료의 딸이었다. 이유필은 안창호와 함께 오랜 시간 독립운동을 함께한 동료였다.
공교롭게도 이유필 딸의 생일은 윤봉길 의사 의거와 같은 날이었는데 의거 사실을 몰랐던 선생은 생일 선물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유필의 집으로 향했다.
선생이 이유필 집으로 향하던 순간, 훙커우 공원에서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일어났고 관련 인물로 지목된 이유필의 집에는 일본 경찰이 들이닥쳤다.
당시 이유필의 집에 있던 선생은 그곳에서 체포됐으며 평소 "어린아이라도 소중히 대해야 한다"라고 했던 그는 체포되는 과정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안창호 선생의 말년(왼쪽부터 몽양 여운형, 도산 안창호, 고당 조만식) /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안창호 선생은 윤봉길 의사 의거와 전혀 관련이 없었음에도 일본은 모진 고문으로 그를 괴롭혔다. 그가 독립운동의 대부였기 때문이다.
일본 간수들은 고문으로 몸 곳곳에 멍이 든 선생을 "기아나이야츠(더러운 자식)"라고 불렀다.
출소 후에도 선생은 독립운동을 이어가다가 또다시 옥살이를 했다. 두 번의 옥살이와 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건강이 크게 악화된 선생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위험한 시기에서도 어린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했던 안창호 선생의 '신의'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