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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터지자 '북한군' 선봉 부대 돼 남침했던 '조선족 부대'

1950년 6·25 전쟁 당시 중국에 살던 조선족들은 국공내전 당시의 경험을 살려 북한으로 들어가 남침의 선봉에 섰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이 38선 아래로 남침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의 시작이었다. 


한국전쟁과 관련해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가 존재한다. 북한 인민군의 선봉에 만주의 조선인, 즉 조선족 부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의 병력 21개 연대 가운데 10개 연대가 만주에서 이동해 온 조선족이었다. 


그리고 전쟁 발발 3일 만인 6월 28일 서울 중앙청을 가장 먼저 점령한 부대 역시 조선족 부대인 조선인민군 제4사단 18연대였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마이웨이'


일제강점기 일본의 핍박을 피해 만주로 이동했던 조선족들 일부는 광복 후에도 한반도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들은 계속 중국에 남아 제2차 국공내전에 참전해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을 대만으로 몰아내는 데 일조하게 된다. 


그 사이 중국 정부는 연변 지역에 남아 있던 조선족들에게 농사지을 땅을 분배하면서 이들이 중국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국공내전으로 단련된 조선족들은 '항미원조, 보가위국(미국에 대항에 북한을 도와 가정과 조국을 지키자)'이라는 중공군의 슬로건에 따라 1950년 한국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인사이트조선족 출신 리양 감독이 제작한 드라마 '38선' /연길뉴스사이트


조선족의 한국전쟁 참전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첫 번째는 마오쩌둥과 북한 김일성의 합의 하에 전쟁 전 북한으로 넘어와 인민군에 편입된 조선족들이다. 


이어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조선족들은 중국 인민지원군으로 다시 한번 참전한다. 


중국과 북한이 앞서 세운 조선족의 활약에 수많은 우리 국군 장병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갔다. 전쟁은 길어졌고 결국 양측의 수많은 피해를 낳은 후에야 끝이 났다. 


전쟁이 끝난 뒤 조선족 부대를 이끌었던 조선 의용군 출신 고위직 지휘관들은 김일성에 의해 숙청당했고, 남과 북 모두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조선족들은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책 '조선의용군의 밀입북과 6·25전쟁'의 저자이자 독립운동가 김동삼 선생의 손자인 김중생 씨는 개전 이전 북한으로 건너간 조선족이 6만 5천 명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전쟁 개전 당시 북한 인민군 전체 병력에 47%에 이르는 수다. 


여기에 중공군 개입 당시 함께 참전한 조선족까지 더하면 약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조선의용군이 밀입북하지 않았더라면 6·25 전쟁은 아예 없었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상당 기간 뒤로 미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역사의 미아가 된 조선족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