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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9일)은 '올림픽 위너' 손기정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여운형이 암살된 날이다

19일 여운형 선생의 타계 72주기를 맞아 서울 우이동 소재 묘소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인사이트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인사이트] 전형주 기자 = 72년 전인 1947년 7월 19일, 독립운동가 몽양(夢陽) 여운형 선생은 뜻하지 않은 불의의 사건으로 삶을 마감했다.


국가보훈처 등이 서울 우이동 소재 여 선생의 묘소에서 72주기 추모식을 진행한 가운데 여 선생의 생전 업적에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다.


1886년 5월 25일 경기 양평군에서 태어난 여 선생의 삶은 어두웠던 우리 근대사 그 자체였다. 여 선생은 한반도에 낙원을 건설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1907년 한 강연회에서 우연히 만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에 감화돼 독립운동에 빠진 뒤 줄곧 광복을 위해 애썼다.


인사이트한국민족문화대백과


1918년 신한청년당을 조직했고, 1919년에는 임시의정원의 외무 차장을 맡아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되기도 했다. 소련과 중국을 오가며 활발한 항일 운동을 벌이다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여운형을 알린 대표적인 사건은 '일장기 말소사건'이다.


그는 조선중앙일보 사장을 맡고 있던 1936년, 신문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렸다. 올림픽을 제패한 마라토너 손기정의 가슴팍에 달린 일장기를 지운 채 보도한 것이다.


일제의 폭압에 항거하는 그의 뚝심과 강단을 여실히 보여준 대목이다.


여 선생은 이 사건 뒤 강제 해직됐으나 건국 동맹을 결성해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광복을 맞이한 뒤에는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해 하나 된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인사이트한국민족문화대백과


그러나 여 선생은 광복에 들뜬 분위기가 다 가라앉지 않은 1947년 7월 19일 극우파의 총탄에 맞아 생을 마감했다. 살인범은 1920년대 잠깐 공산당에서 활동한 여 선생의 전력을 문제 삼았다.


좌파라는 이유만으로 50년 가까이 그의 이름은 금기어가 됐다. 그러다 200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독립운동 서훈 2급)에 추서됐다.


3년 만인 2008년에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급)으로 승급돼 명예를 회복했다.


한편 이날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망일이기도 하다. 서울 현충원에서는 이 전 대통령을 기리는 54주기 추모식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