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15℃ 서울
  • 15 15℃ 인천
  • 13 13℃ 춘천
  • 10 10℃ 강릉
  • 15 15℃ 수원
  • 17 17℃ 청주
  • 17 17℃ 대전
  • 13 13℃ 전주
  • 17 17℃ 광주
  • 16 16℃ 대구
  • 15 15℃ 부산
  • 16 16℃ 제주

[신간] "아이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습니다"…사춘기 아들과 함께한 러시아 여행기

사춘기 중학생 아들과 함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14박 15일간 러시아를 여행한 두준열 작가의 기록을 파헤쳐본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다할미디어


[인사이트] 이하린 기자 = 저자 두준열은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농장 체험, 캠핑, 마라톤 참가, 무인도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아이들의 성장을 살뜰히 챙겨왔다고 자부하는 아빠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아이들의 사춘기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대화가 줄고, 말없이 등교하는 아이들의 뒷모습만 바라보기 일쑤였다. 


옛 성현은 "나갈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오면 얼굴을 뵌다(출필곡 반필면)"며 자녀의 도리를 가르쳤건만, "아빠 다녀왔다"고 먼저 아이들의 방문을 두드려야만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씁쓸한 현실이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사춘기를 보내는 아들과 잘 지낼 수 있다"고 자조했다. 


학교와 학원에서는 공부에 치이고 집에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빠져 사는 아들과 관계가 소원해지는 게 못내 아쉬웠던 아빠. 그는 마침내 아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다할미디어 


이 책은 자녀 교육에 누구보다 관심 많은 열혈 아빠가 지난해 7월 17일부터 31일까지 14박 15일간 중학생 아들(두현명·15)과 러시아를 여행한 기록이다. 


아이와 좀 더 가까이서 부대끼고 색다른 경험을 함께 하며 마음을 나누고 싶어 선택한 여행지였다. 러시아의 속살을 보고 느끼는 체험을 하려면 대륙을 가로지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여기에 아들이 좋아하는 곤충 그림을 그려주다가 그림의 매력에 빠져 시작한 어반 스케치(urban sketch)까지 곁들인 여행이었다. 


덕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그림 그리며 러시아를 만난다'는 독특한 테마 여행을 함께 즐기며 가족 간의 사랑과 신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다할미디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장장 9,288km를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세계에서 가장 긴 구간을 달리는 기차다. 전 세계 여행자들이 꼭 한 번은 타고 싶어 하는 로망의 대상이다. 


저자와 아들은 4인 공유 객실(쿠페)에서 현지인들과 생활하며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정 많고 속 깊은 러시아 사람들의 정서와 문화를 몸소 체험했다. 저자의 특기를 살려 그림도 그려주고 같이 그림 그리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었을까.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아들이 여정을 통해 꿈을 되찾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그려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열정을 가진 아빠'라서 가능했다. 


물론 고되기도 하고 아들과 갈등을 빚는 순간도 있었지만 아이가 자라는 동안 부모에게 주었던 사랑과 기쁨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렸다. 


덕분에 일상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아이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도 했다. 아들은 제법 의젓하고 든든한 여행의 동반자가 돼주었으며 발군의 그림 실력을 드러냈다. 그것은 이국을 만나는 경험보다 훨씬 신기하고 값진 발견이었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다할미디어 


러시아 사람들과 쌓은 우정도 큰 소득이었다. 특히 기차여행은 승객들과 어울리며 친구가 되는 과정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저자는 욕심만 앞세우는 '나쁜 아빠'였다면 이번 여행을 통해 아이를 기다려주고 천천히 함께 가는 여정을 택하는 부모로 거듭난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몸살이 난 아이를 안쓰럽게 바라보다 결심했다. "아이들은 러시아보다 훨씬 광활한 이 세상에 나가기 전 부모 품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부모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책에는 횡단열차 안에서, 바이칼 호수에서, 이르쿠츠크에서, 그리고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마주한 러시아 명소를 그린 아빠와 아들의 스케치가 나란히 실렸다. 따뜻하고 밝은 느낌의 채색화는 아빠,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펜으로만 그린 그림은 아들 현명이의 솜씨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이나 러시아 방문을 꿈꾸는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흥미로운 이야기와 멋진 사진과 그림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저자는 특히 "이 이야기가 미로처럼 복잡하고 계산의 끝을 모르는 방정식만큼이나 어려운 자녀교육을 함께 하고 있는 동시대 부모들에게 소소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권당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