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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 만세!" 외친 유관순 열사가 일제로부터 당한 '끔찍한 고문'

나라를 빼앗긴 국민들의 수많은 외침 중에서도 17살 소녀, 유관순 열사의 용기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준다.

인사이트(좌) 유관순 열사, (우) 8·15 광복, 일본 패망 소식에 거리로 나온 시민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사이트] 김한솔 기자 = "대한독립 만세, 만세, 만세!"


100년 전 오늘(1일) 오후 2시. 손병희 선생을 비롯한 민족대표 33인은 서울 인사동의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그 어느때보다 결의에 찬 목소리였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국민들은 조선 팔도 곳곳에서 만세 함성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었다.


일제의 탄압에 저항하는 대규모 독립운동인 3·1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인사이트뉴스1


나라를 빼앗긴 국민들의 수많은 외침 중에서도 17살 소녀의 용기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준다. 유관순 열사다.


유관순 열사는 3·1운동 참여에 이어 그해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수천 명의 국민이 모이자 시위대 선두에서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러던 중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본 헌병에 체포돼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다.


유관순 열사는 일제의 끔찍한 고문에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칠 굳은 각오를 꺾지 않은 채 대한독립만세를 목놓아 외쳤다.


인사이트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일제는 유관순 열사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꺾고자 펜치로 손톱과 발톱을 강제로 뽑는 것도 모자라 잔혹한 성(性) 고문까지 추악한 만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다음 해인 1920년 9월 28일. 출옥을 불과 이틀 남겨두고 유관순 열사는 차가운 형무소 바닥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옥중 타살이었다. 그토록 조국의 독립을 바라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라만을 생각했다.


유관순 열사의 유언이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