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울지마 톤즈'
[인사이트] 디지털뉴스팀 = 9년 전 오늘인 2010년 1월 14일,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서 봉사활동에 헌신하던 이태석 신부가 숨을 거뒀다.
1962년 부산시 서구 남부민동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태석 신부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해 의과 대학에 진학했다.
이후 이태석 신부는 군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처음으로 신부에 대한 꿈을 가졌다.
그는 제대 후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해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이태석 신부는 열정적이었다. 남들보다 늦은 시작이었지만 남다른 신앙과 덕행으로 배움을 이어갔다.
영화 '울지마 톤즈'
2001년 6월 24일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아 비로소 신부가 된 그는 아프리카 케냐로 건너갔다.
이후 전쟁과 가난으로 얼룩진 남수단의 톤즈로 이동해 의료 지원뿐 아니라 여러 봉사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수단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태석 신부는 병원을 손수 만들고, 한센병 환자들과 결핵 환자들을 보살피며 지속적인 예방접종 사업을 벌였다.
특히 발가락이 뭉그러진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특수 제작한 신발을 선물하기도 하고, 학교와 기숙사를 짓고 수학을 가르치기도 한다.
거기다가 아이들을 모아 악단을 만들고 스스로 교본을 보고 배워서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쳤다.
영화 '울지마 톤즈'
봉사를 자신의 목숨처럼 여기며 의료활동을 해가던 이태석 신부는 한국을 잠시 방문한 2008년 10월,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담당 의사에 따르면 그는 말기 암 선고를 받고도 "톤즈에서 우물을 파다 왔다"라며 "마저 다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본인의 암 판정보다 앞으로 계속 이어나가지 못할 봉사활동에 대한 걱정이 더 컸던 것이다.
투병 중에도 자선 공연과 봉사활동 지원을 이어가던 이태석 신부는 2010년 1월 14일 새벽 5시 35분 "Everything is good"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47세의 일기로 눈을 감았다.
톤즈의 현지 주민들에게 의사이자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 그리고 아버지이기도 했던 이태석 신부의 따뜻함이 더욱 그리운 오늘이다.
영화 '울지마 톤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