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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걷기 교주' 하정우가 인생을 진짜 잘 사는 간단명료한 방법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어도 하정우는 걷는다. 그렇게 배우이자 단단한 사람 하정우로 하루하루 성장해 간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문학동네


[인사이트] 이하영 기자 = 이 책을 50쪽쯤 읽어갈 무렵 기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이거 정말 걷기 책 맞구나!"


배우 공효진 외 다수의 사람들과 도전한 국토대장정부터 시작해 이 책에는 걷기에 대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지식들이 총망라되어있다.


걷기 방법, 사례, 노하우 전수 등 흡사 걷기의 '백과사전'과 같은 느낌이랄까.


저자 하정우가 직접 걷자고 집요하게(!) 졸랐다는 100kg이 넘는 한 영화제작자의 사례를 보면 책을 절대 앉거나 반쯤 누운 자세로 편하게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경각심도 든다.


하정우는 격무에 시달리며 점점 건강을 잃어가던 해당 영화제작자가 조금씩 걷기 시작하더니 결국 살이 20kg 이상 빠졌다고 했다.


살이 빠지고 자신감이 붙은 영화제작자는 현재 영화 일까지 술술 풀리고 있다며 저자는 책 속에서 은근한 자랑을 풀어 놓는다.


여기까지 읽자 책을 든 채 침대 한구석에 구겨져 있던 기자도 차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인생 역전'을 마음에 새기며 한명의 독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문학동네


독서하며 걸을 때는 양손으로 단단히 책을 잡고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한 상태에서 제자리 걷기를 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걷는 사람, 하정우'의 반 이상을 걸으면서 읽은 기자가 익힌 걷기 노하우다.


쉬엄쉬엄 '읽다, 걷다'를 반복한 걷기 입문자와 다르게 하정우는 참 꾸준히 오래 걷는 사람이었다.


그는 책에서 촬영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하루 3만보 정도를 걷는다고 말했다.


러닝머신을 타고 50분간 약 5~6천보로 1교시를 시작한 하정우는 작업실이나 영화사로 출근하며 또 걷는다.


차는 물론 이용하지 않고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 등은 가급적 타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동 때 걸음수를 '알뜰살뜰' 모아야 한다. 그래야 3만보를 채울 수 있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문학동네


기자는 책을 읽다 잠시 든 채로 제자리 걷기를 하며 생각했다. 그렇게 3만보를 채워 뭘 하지?


남성 배우들이 몰두하는 헬스를 하면 식스팩으로 잡지 화보를 장식할 수 있고, 무술을 연마하면 보다 강력한 액션배우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걷기는 어떨까? 하정우가 가끔 하와이에서 걷는다는 10만보, 평소에 걷는 3만보. 아무리 걸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아마 11만보를 걷는다 해도 식스팩은 생기지 않을뿐더러 무술 실력이나 대사 암기력, 표현력이 늘기도 않는다. 걷는다고 그림의 영감이 떠오르는 것도 아닐 터다.


그런데 정말 걷기에 아무것도 없는 걸까? 그렇다면 앞서 걷기 효과의 '산증인'인 영화제작자는 뭐란 말인가.


비밀은 책장을 모두 덮었을 때쯤 확실히 알 수 있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문학동네


매일 3만보를 일상생활에서 챙겨 걷는 하정우는 촬영이 없을 때도 쉬지 않는다.


걷기 멤버들과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를 독려하고, 함께 모여 책을 읽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잠깐 틈이 나면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삶을 올바로 지탱하는 법을 알았더라면 더 오랫동안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정우는 오래 예술을 하기 위해서 걷는다. 그에게 일탈하는 예술가는 고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시간을 오래 들여야 쌓이고 깨우치게 되는 것"들을 얻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몸과 마음을 단단히 만들기 위해 걷는다.


걷기는 몸을 단련하는 동시에 마음을 단련하는 운동이었다. 


무명 시절부터 수많은 고민과 좌절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던 과거의 하정우가 있었기에 지금의 '천만 배우'인 그가 있다.  


그를 보며 나이 들며 보다 단단해지는 아주 간단한 인생 사는 법을 배웠다. 방구석 독자 한명은 오늘부터 1만보 걷기를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