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항일운동을 재현하는 학생들의 모습 / 뉴스1
[인사이트] 김천 기자 = 89년 전 오늘(3일)은 광주에서 학생 항일운동이 시작된 날이다. 이날 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한 열차 안에서의 싸움이 발단이 됐다.
당시 열차에 탑승한 일본인 중학생들은 한국인 여고생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희롱했다.
이를 본 여고생의 사촌 동생은 일본인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인 학생은 사과를 거절하면서 "조센징 주제에"라고 말했다. 열차 안의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학생들은 곧 서로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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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패싸움으로 커졌다. 일본인 학생 50명과 조선인 학생 30명은 난투극을 벌였다.
이를 목격한 일본 경찰은 일방적으로 일본 학생들의 편을 들고 조선 학생들을 구타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서 편파 보도 됐다.
학생들은 힘없는 나라도 서러운데 경찰과 언론마저 편파적으로 대응하는 데에 분노했다. 이를 계기로 학생 사이에서 반일 감정은 더욱 고조됐다.
이런 가운데 11월 3일(음력 10월 3일)에는 고조선의 건국을 기념하는 개천절임에도 불구하고 천황의 탄생을 축하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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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분했다. 이날 생일 축하 행사에 참석한 학생들은 행사를 마치고 광주 시내에 모였다.
그리고 열차 폭행 사건을 편파적으로 수사한 것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본은 광주 시내의 모든 중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시위에 참여한 조선 학생들은 모조리 붙잡아 구금했다.
학생들은 이 모든 일의 근본적 원인이 '일제 강점'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투쟁의 상대를 일제로 방향을 잡고 다음과 같은 행동 강령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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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의 투쟁 대상은 일본 학생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이니 투쟁 방향을 일제로 돌린다.
2. 일본 학생에 대한 적개심과 투쟁을 일제에 대한 증오와 독립투쟁으로 바꾼다.
3. 적개심에 불타는 학생들을 식민지 강압 정책 반대 시위운동으로 돌린다.
4. 우리는 앞으로 다른 동지들과 연락하여 다음 투쟁을 준비하고 계획한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국가보훈처
시위대의 주도로 시작된 항일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70여 명도 안 되는 적은 숫자의 학생들의 용기는 나비효과처럼 전국에 퍼지기 시작했다.
첫 시위 시작 후 다섯 달 동안 전국 320여 개 학교에서 5만 4천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국내 3대 항일 운동 안에 들 정도로 대규모 시위로 커진 광주학생항일운동. 민족적 차별과 억압에 맞서야 한다는 학생들의 의로운 분노는 민족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