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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연애는 끝나도 그 찬란했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설가 줄리언 반스가 모든 사랑은 각기 유일하다고 밝힌 장편소설로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인사이트다산책방


[인사이트] 이하영 기자 = '나이 차가 많은 커플'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다.


학자금 대출과 주거비, 생활비 등에 몸살을 앓는 20대 여성과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고 사귀는 40~50대 아저씨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낸다.


같은 의미에서 20대 남성과 40대 여성이 사귈 경우에도 적지 않은 세상의 눈총에 시달리게 된다.


성인이 된 경우라도 경제력을 갖춘 쪽이 그렇지 못한 상대를 자본으로 휘두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성(性)을 돈으로 사고파는 일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다수의 사람들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하곤 한다.


앞에서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줄리언 반스의 장편소설 '연애의 기억' 속 커플이 일반적인 나이 차 커플의 예와 다르기 때문이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성인이 된 딸이 두 명이나 있는 수전은 48살의 여성이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갓 대학에 입학한 19살 대학 새내기 청년 폴이다.


두 사람은 테니스클럽에서 제비뽑기로 운명적인 혼합복식조가 된다.


세련된 유머와 담백한 말투, 풍자 정신이 있는 수전과 폴은 자연스럽게 최고의 테니스 파트너이자 말동무에서 세상에 한 명밖에 없는 애인 사이로 발전한다.


그들은 데이트를 하고, 잠자리를 함께 하고, 여행도 간다. 나중에는 폴의 대학교 주변에 집을 얻어 같이 살기까지 한다.


극명한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나이 차 커플의 익숙한 예와 함께 놓이지 않은 이유는 폴이 돈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수전이 가정폭력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 사이에 '나이'라는 불합리함을 메우는 요소가 된다.


남편 매클라우드의 폭력으로 부서지는 수전에게 폴은 안전한 버팀목이 되어주려 했다. 그 깊은 사연은 폴의 기사도 정신과 낭만적인 연애에 불을 지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아쉽게도 열렬하게 불타오른 두 사람의 연애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결혼으로 맺어지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끝이 좋지 못했다는 뜻.


자신이 구축한 인간관계에서 떨어져 나와 폴의 인간관계로 옮아간 수전은 설 곳을 잃고 괴로워 한다.


유머, 요리, 여유 등 자신의 자랑들이 들어갈 틈은 어느새 사라졌다.


대신 수전은 늙어가는 자신과 점점 성숙해가는 연인을 비교하고, 그의 친구들을 질투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런던에서 폴은 10여년간 수전 옆을 지켰지만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그녀는 여전히 미시즈 매클라우드였다.


수전은 안 좋은 일에 빠져들었고 폴은 오랜 고민 끝에 결국 그녀의 손을 영원히 놓기로 결심한다.


그는 말한다. "가장 열렬하고 가장 진지한 사랑이라도, 정확한 공격을 받으면, 연민과 분노의 혼합물로 응고해버릴 수 있다는 깨달음. 그의 사랑은 사라졌다, 쫓겨나버렸다, 달이 갈수록 해가 갈수록"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사랑 후에 그들에게 남은 것은 고통일까 아쉬움일까. 행복한 감정이 남아있을까.


수전과 헤어진 후 폴은 감정에 묶이지 않고 서로 즐기다 헤어질 정도로 가벼운 만남의 상대만을 골라 사귄다.


또 사랑에 대한 정의를 적는 공책 한 권을 마련한다.


그는 거기에 자신이 동의하는 사랑에 대한 글귀를 적어놓고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과감하게 지워버렸다.


몇 년에 한 번씩 들춰보며 여러 번에 걸쳐 검열도 한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기록은 이렇다.


"사랑에서는 모든 것이 진실인 동시에 거짓이다. 사랑은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한 가지 주제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불행의 이유가 각기 다른 것처럼 사랑의 이유도 모두 다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50여년전 런던 교외도 21세기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의 영문 제목은 '더 온리 스토리(The Only Story)'다. 한국어로 '단 하나의 이야기' 정도로 해석된다.


수전과 폴의 연애는 많은 사랑 이야기 중 하나이지만 '일반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 줄리언 반스는 어쩌면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사랑에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장애는 무의미하다. 모든 사랑은 제각기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면 그 세상에 유일한 존재를 더욱 소중히 여기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