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7일(토)

이산가족 선정 후보자 명단에 없어 허탈해하는 95세 할아버지

인사이트뉴스1


[인사이트] 최민주 기자 =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1927년 발표된 정지용 시인의 '향수' 중 일부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잃어버린 국토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한 시다.


특수한 역사적 배경을 안고 탄생한 작품이기는 해도 고향을 잃은 아픔을 가진 '실향민'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서글픈 언어다.


70여년 전 조선은 광복을 이룩했고 대한민국이 됐지만 이후 허릿단이 끊긴 한반도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이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북으로, 또 남으로. 포탄을 피해 떠나온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지금까지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박성은(95) 할아버지도 고향땅을 밟지 못하는 이들 중 한 명이다. 평안북도 철산군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수도 없이 해왔지만 번번이 떨어졌다고 한다.


25일 대한적십자사(한적)에서는 6.25 전쟁 발발 68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갈 1차 상봉자 추첨이 있었다.


이날도 어김없이 박성은 할아버지는 추첨를 위해 현장을 찾았다. 최종 상봉인원의 5배수인 500명을 추첨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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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명단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박성은(95) 할아버지 / 뉴스1


다음을 기약할 수 없지만 이번 상봉자 명단에도 할아버지 이름은 없었다. 결국 탄식을 내뱉은 할아버지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애써 뒤돌아야 했던 가족들은 박 할아버지 뿐이 아니었다. 


황해도 신계군에 세 살배기 딸을 두고 온 이용녀(90) 할머니도, 황해도 개성이 고향이라는 김영헌(90) 할아버지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올해 5월 말 기준으로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인원은 13만 2,124명이며 이 중 생존자는 5만 6,890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70대 이상의 고령이다.


인사이트발걸음 돌리는 김영헌 할아버지 / 뉴스1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이날 "5만 7천명이 기다리는데 겨우 500명을 1차 추첨하는 것은 무척 부족해 마음이 무겁다"고 전했다.


이어 "남북접시자회담 합의문에 있는 것처럼 앞으로 판문점 적십자 채널을 통한 실무접촉으로 이산가족 생사확인·화상상봉 및 직접상봉·고향방문·성묘를 위한 모임을 계속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남북관계가 해빙 국면을 맞이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도 빠르게 해결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차마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만나기에 너무 늦지 않도록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