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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끝까지 후원한 신문기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던 안중근 의사 뒤에는 이를 끝까지 후원했던 한 신문기자가 있었다.

인사이트

(좌) 안중근 의사 / 연합뉴스, (우) 이강 선생/ 독립기념관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오늘(26일) 안중근 의사가 서거 108주기를 맞았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독립운동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안중근 의사. 그리고 그의 뒤에는 거사를 치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한 신문기자가 있었다.


바로 평생을 항일운동에 목숨을 바친 오산 이강 선생이다.


1909년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대동공보사에 안중근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여럿이 모였다.


대동공보는 1908년 창간된 러시아 주재 교민단체 신문이다. 대동공보에는 언제나 조선의 독립과 국권회복을 열망하는 논설, 기사 등이 실렸다.


국내를 비롯해 시베리아, 상해, 하와이, 멕시코 등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국민들이 이 신문을 암암리에 돌려보며 독립운동의 힘을 모았다.


인사이트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를 저격하는 모습을 상상한 그림 / 사진 제공 = 안중근 의사 기념관


이강 선생은 이러한 민족신문 대동공보의 기자였다. 앞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해조신문을 창간해 논설기자로 활동했던 그는 대동공보로 제호를 바꾸며 편집을 맡았다.


안중근 의사는 대동공보사로부터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제국의 재무장관과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대동공보사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계획을 세웠던 그 역사적인 현장에 이강 선생도 있었다.


이강 선생은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가 하얼빈으로 떠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인사이트앞줄 중앙이 이강 선생, 앞줄 우측이 도산 안창호 선생 / 서울흥사단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 있는 동안 대동공보사와 연락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도운 것 역시 이강 선생이었다.


이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 사살에 성공하고 일본 경찰에 잡혀가자, 이강 선생은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북경으로 건너가 활동하기도 했다. 


1919년 이강 선생은 일본총독 사이토에서 발생한 폭탄 투척 사건에 연루돼 50일간 투옥당했다.


석방 후에는 상해에서 안창호를 만나 임시정부에 참여하며 끝까지 독립을 향한 의지를 불태웠다.


인사이트(좌) 이강 선생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우) 국가보훈처 


광복 후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20대 중반, 안창호를 만나 그의 권유로 학업을 뒤로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이강 선생.


그는 묵묵히 투사들을 후원하며 평생을 나라와 민족만을 생각하다 1964년 10월 13일 영면에 들었다.


죽음을 불사했던 이강 선생의 절개와 고귀한 희생정신은 후대에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