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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던 여대생은 '신생아 유기 자작극'을 준비했다

신생아 유기 자작극을 벌인 20대 여성, 그 뒤에는 미혼부모가 견뎌야 할 냉혹한 현실이 있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연합뉴스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영하 8도' 매서운 바람이 불었던 지난달 30일 새벽 4시, 119 상황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대전의 한 아파트 복도에서 탯줄 달린 신생아를 발견했다는 신고 전화였다. 긴급 출동한 119 대원들은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20대 여성 A씨와 마주했다.


신고자의 처제였던 A씨는 "새벽에 아파트 복도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 나갔더니 아기가 울고 있어 일단 집에 데려왔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곧바로 아기를 안아든 구조대원은 병원으로 향했고, 다행히 아이의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연합뉴스 


그런데 경찰은 현장에서 양수나 혈흔 등 출산 흔적이 없다는 점을 수상히 여겼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보통 영하 8도에 신생아가 방치된다면 수 분 내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아이는 건강했다. 그렇다면 유기와 동시에 아이를 구조했다는 뜻이 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CCTV를 돌려봤지만 그 시각 아파트를 출입한 사람은 없었다.


경찰은 A씨를 추궁하기 시작했고, 결국 A씨는 자신이 아기를 낳았다고 실토했다. 한파에 신생아를 구한 여대생은 다름 아닌 아이의 엄마였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A씨는 이전에 만난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아이가 생겼지만, 그 후로 남자친구는 연락되지 않았다.


이후 가족에게도 임신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A씨는 사건 전날 언니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언니 부부가 사는 광주 두암동의 한 아파트로 왔다.


30일 새벽 A씨는 언니 집 화장실에서 혼자 아기를 낳았고, 가족에게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어 아파트 복도에서 아기를 발견했다고 거짓말했다.


처음부터 '유기'는 없었다. A씨는 "혼자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 남의 아이를 구한 것처럼 허위 신고해 양육을 포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신생아 유기가 '자작극'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충격에 휩싸였다. 어떻게 엄마가 아이 버릴 생각을 하냐며 여대생을 향해 비난의 화살도 쏟아졌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한 여대생의 자작극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이번 사건은 미혼부모가 홀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한국 사회의 슬픈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영아유기 사건은 718건이다. 한 해 평균 100여 명의 아기가 거리에 버려지는 것이다.


아이를 입양보내지 않고 유기하는 데에는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 영향이 크다. 당시 정부는 입양된 아기의 허위출생신고나 허위 입양을 막기 위해 반드시 친모가 출생기록을 남기도록 했다.


때문에 미혼부모로 낙인찍힐 것이 두려운 상당수 부모들이 입양 대신 유기를 선택한다. 베이비박스에 불이 꺼질 줄 모른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사이트연합뉴스 


물론 아이의 양육을 포기하려 했던 A씨와 A씨 남자친구의 행동을 마냥 옹호할 수는 없다.


두 사람에겐 피임 등 사전에 임신을 막을 충분한 기회가 있었고, 이를 간과한 두 사람에게도 확실한 책임이 있다.


다만 아이의 아빠인 남자친구는 연락 두절됐고 A씨는 임신부터 출산, 양육까지 모든 짐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미혼부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넘쳐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제도적 지원까지 미비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이 여대생에게 과연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이번 사건을 그저 '개인의 잘못'으로만 몰아간다면 제2의, 제3의 유기 자작극은 계속 벌어질 것이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아이들이 아무런 보호 없이 길거리에 버려지는 일을 막기 위해 프랑스, 독일, 미국 등에서는 '출산비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임신 때부터 출산까지 정부가 책임지며, 출산과 동시에 병원에서 바로 출생신고가 되는 시스템이다. 만약 엄마가 키우겠다고 하면 이 또한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


유기도 막고 미혼부모의 자립도 돕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최초로 베이비박스를 운영한 주사랑공동체교회 측은 바른정당 오신환 의원과 함께 '비밀출산' 특별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르면 2월 국회에 발의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비밀출산' 제도가 영아 유기 사례를 줄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고 있다.


한편 신생아 유기 자작극을 벌인 여대생은 "깊이 반성 중이다"라는 말과 함께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일순간 세상에 버려졌던 아이는 다시 따뜻한 엄마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파트 복도에서 아기 구했다던 여대생이 '거짓말'한 이유한파 속에 아파트 복도에 버려진 신생아를 구조했다고 신고한 대학생이 유기된 아기의 엄마인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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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정 기자 kyoojeong@insight.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