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못 구했다고 '힘없는' 소방관만 잡아넣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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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제천참사 진상규명에 착수한 경찰이 오늘(23일) 소방관 2명을 형사 입건했다.


제천 화재 참사에서 스포츠센터의 불량 소방시설에 대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허위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혐의다.


앞서 지난 15일에는 소방관의 부실 대응 여부를 확인한다며 충북소방본부, 소방종합상황실, 제천소방서의 압수수색이 벌어지기도 했다.


벌써 이상민 제천소방서장, 김익수 충청북도 소방본부 상황실장, 김종희 제천소방서 지휘조사팀장 등 소방관 4명이 '직위해제' 징계를 받았다.


그동안 수많은 화재 사건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경찰이 적극적으로 소방당국에 책임을 묻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소방당국 압수수색은 1992년 4월 소방본부가 설치된 후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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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사 과정에서 소방관의 잘못이 있는지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총체적인 소방 시스템 부재를 논하지 않고 목숨걸고 화마로 뛰어들었던 소방관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번 제천 화재 '사고'를 '참사'로 키운 건 터무니없이 부족한 소방인력과 노후된 장비, 불법주차를 방치한 소방법규 등이었다.


실제로 제천소방서에는 법정기준 190명의 절반도 되지 않는 93명이 일하고 있다. 사건 당일 현장에 도착한 1차 소방관 인력 역시 13명에 그쳤다. 소방차도 4대에 불과했다.


당시 선발대는 구조 매뉴얼대로 3층 창문에 매달린 사람을 가장 먼저 구조했으며, 또 더 많은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LPG 탱크폭발 주변으로 번지는 불을 먼저 진화했다.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2명이 들어야 할 무거운 소방호스도 소방관 혼자 짊어져야 했다. 만약 법정기준 만큼 인력이 채워져 있었더라면 내부 수색과 인명 구조가 더욱 빨리 이뤄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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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된 장비와 미흡한 소방법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제천 참사 당시 소방무전기가 먹통이 돼 소방관들간의 통신 교류가 어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청에 따르면 충북이 보유한 소방무전기 1천 545대 중 58%(897대)가 사용기한 7년을 넘긴 노후장비로 파악됐다.


구조 과정 중 생긴 파손까지도 모두 소방관이 덤터기 써야하는 미비한 소방법규도 마찬가지다.


왜 소방관이 '못했냐'를 물을 것이 아니라, 소방관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열악한 현실을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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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제2의 제천 참사를 막기 어렵다. 처벌보다 중요한 건 예방이다.


현장의 소방관들이 늦게 출동할 수밖에 없었던, 재빨리 내부로 뛰어들 수 없었던 근본적 원인을 되짚지 않고서는 제천참사 진상규명은 미봉책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진실'을 밝힌다며 강압적으로 수사한 탓에 목숨걸고 싸운 소방관들의 사기만 바닥을 치고 있다.


눈앞에서 동료가 징계를 받고, 경찰들이 들이닥쳐 압수수색하는 과정을 지켜본 제천소방관들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그만둬야 하나 자괴감이 든다"고 호소한다.


사람을 구해도, 사람을 구하지 못해도 매번 죄인 취급 당해야하는 소방관들. 이들의 절망과 자괴감으로 우리 사회가 얻을 수 있는건 무엇일까.


이번 '제천참사 진상규명'이 힘없는 소방관들만 사지로 몰고가는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 無權有罪)'로 치닫지 않길 바랄 뿐이다.


제천화재서 현장 지휘한 소방관 "죽고 싶을 만큼 죄송합니다"제천 화재 참사 당시 현장 지휘를 담당했던 소방관이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고, 죄송스럽다"고 심경을 밝혔다.


"제천 화재 소방관 처벌하지 말아주세요"…국민청원 2만 6천명 돌파충북 제천 화재 진압을 도맡았던 소방관들을 처벌하지 말아달라는 청원이 2만 명을 돌파했다.


황규정 기자 kyoojeong@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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