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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시 의정부와 강남 아파트의 ‘대피소’ 차이

지난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파트 주민들의 대피소는 강남구청에서 마련한 인근 5성급 호텔이었다


 

이른바 '풀옵션'인데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5만 원인 '아파트'가 있다.  


화장실을 포함해 5평짜리(약 17㎡) 방 한 칸을 새로운 법은 '아파트'라 불러도 좋다고 했다.

내가 누운 공간은 '도시형 생활주택'의 원룸이었지만, 나의 주소는 의정부 대봉그린APT였다. 
 
도시형 생활주택이라는 복잡한 이름의 이 건축물은 이명박 정부 때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의 하나로 탄생했다. 

집 뒤로는 전철이 달려 진동이 느껴졌다. 95세대에 주차장은 최소한의 구색만 갖췄고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외벽은 그런대로 깔끔하게 마무리했으나 작은 불에도 바로 타는 재료를 썼다. 방화벽은 사치에 불과했다.  

똑같은 10층짜리 옆 건물과의 간격은 1.5m도 안 됐다.

원래는 지을 수 없는 건물이었으나 '서민 주거난 해소'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법을 고쳐 짓게끔 했다.  

근근이 도시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젊은이들은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이곳에 잠시 자리를 잡았다. 

사회초년생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은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조건도 복잡했다.

고단한 몸을 누이고 대부분 모처럼 늦잠을 자던 토요일 아침, 화마가 건물을 덮쳤다.

주민들은 유일한 보금자리를 잃었다. 



또 대부분 주민의 전 재산이었을 전·월세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도 현재로선 막막하다.

혼자 살던 한 30대 여성은 "보증금을 못 빼오면 정말 돈이 한 푼도 없고 신용이 좋지 않아 대출도 못 받는다"며 "이 땅에 갈 곳이 정말 없다"고 울먹였다.

열흘째 초등학교 강당과 찜질방을 전전하는 이들에게 의정부시는 육군 306보충대와 의정부시 체육관을 두 번째 임시 거처로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운영 중인 임시 대피소는 학생들 개학 전까지 비워줘야 한단다.

시장이 당초 약속했던 '3일 내 제대로 된 숙소 마련'은 허사가 됐다. 치료비 '선(先)보증 후(後)구상권' 등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아 퇴원도 못하는 부상자들이 있다.

장차관과 국회의원들이 방문하고 갔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재민들이 반발하고 있으나 인터넷에 실린 기사엔 주민들을 향한 악성 댓글들까지 달리고 있다. 

화재 진압 당시의 '헬기 바람' 논란에서 촉발돼 관련 보도마다 '그 정도도 고마운 줄 알아라'는 식의 비난 댓글이 줄을 이었다. 

문득 지난해 대기업 헬기 충돌사고가 났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파트 주민들의 대피소는 어디였는지 궁금해졌다. 

'진짜' 아파트 주민인 이들의 임시 거처는 강남구청에서 마련한 인근 5성급 호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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