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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25구가 바다에 버려진 '선상 살인사건'의 전말 6

소름 끼치도록 끔찍했던 여수 앞바다 '제7태창호 사건'의 전말에 대해 알아보자.

인사이트영화 '해무'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지난 2001년, 우리나라 남해상에 시체 25구가 버려진 사건을 아는가.


당시 한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한 조선족들은 중국 어선에 승선해 여러 번 배를 옮겨타며 우리나라로 접근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비극이 찾아오며 조선족들은 차가운 주검으로 변해버렸다.


이에 선장과 선원들은 살인 사고를 은닉하기 위해 시체를 바다에 버렸는데, 이 사건이 바로 '제7태창호 사건'이다.


하지만 다수의 언론에서 이를 다루지 않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잊혀져 갔다.


그러던 중 지난 2014년 영화 '해무'에서 해당 사건이 다뤄지면서 재조명된 바 있다. 소름 끼치도록 끔찍했던 '선상 살인사건'의 전말에 대해 알아보자.


1. 은밀한 제안


인사이트영화 '해무'


지난 2001년 9월, 전라남도 여수시 봉산동의 한 다방에서는 은밀한 거래가 성사됐다.


당시 조선족 밀입국 브로커인 여모 씨는 제7태창호 선장인 이모 씨에게 바다에서 밀입국자를 태워서 들어와달라는 제안을 했다.


이모 씨는 한사코 거절했으나 밀입국에 성공하면 3천만원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 이를 승낙했다.


2. 조선족 밀입국 시도


인사이트영화 '해무'


며칠이 지난 후 선원들과 함께 제7태창호를 이끌고 바다로 나선 이모 씨는 평소처럼 어업을 이어갔다.


이때 중국 저장성 닝보항에서는 조선족 60명이 한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20톤급 어선에 올라타 출발한 상황이었다.


3. 접선


인사이트영화 '해무'


유난히 비바람이 몰아치던 지난 2001년 10월 5일, 제7태창호는 제주도 남서쪽 110마일 해상에서 중국으로부터 출발한 배와 마주했다.


서로에게 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은 두 배는 거친 파도 위에서 접선을 시도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단 10분 만에 60명의 사람들이 제7태창호로 옮겨 탔으며, 이후 제7태창호는 본격적인 밀입국을 위해 여수로 향했다.


4. 소리 없는 아우성


인사이트영화 '해무'


다음날 오전, 선장과 선원들은 밀입국 시도가 해경의 단속에 걸릴 것을 우려해 조선족들을 물탱크와 어구창고에 숨겼다.


물탱크에는 35명, 어구창고에는 25명이 각각 숨긴 뒤 뚜껑을 닫아 단속망을 피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물탱크에 숨었던 35명은 모두 무사했지만, 어구창고에 갇혀 있던 25명이 모두 사망한 것.


사건 이후 경찰의 조사 결과 당시 어구창고 안에 있던 사람들은 "숨이 막히니까 뚜껑 좀 열어달라"고 소리쳤지만 선장 이모 씨는 "걸리면 모두 죽는다!"며 뚜껑을 열지 않았다.


5. 사체 유기


인사이트영화 '해무'


선장 이모 씨는 브로커 여모 씨에게 연락해 "25명이 죽었다. 큰일이다"라고 사고 소식을 전했고, 여모 씨는 "시체는 바다에 버리고 생존자들만 보내라"고 지시했다.


이에 제7태창호 선장과 선원들은 생존자들을 먼저 소형어선에 태워 보낸 뒤 여수시 남면 소리도 인근 해상으로 이동해 시체 25구를 바다에 던졌다.


이후 여수 주민들은 밀입국자들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고, 당시 경찰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밀입국한 조선족 35명을 검거하고 '선상 살인사건'의 전말을 밝혀냈다.


6. '살인죄'가 아니다


인사이트영화 '해무'


조사 결과 어구창고에 갇혔던 25명은 전원 질식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제7태창호 선장 이모 씨가 고의로 25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에 이모 씨와 밀입국을 중개했던 브로커 여모 씨에게 과실 치사와 사체 유기,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을 적용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또한 범행에 동조했던 선원 9명에게는 각각의 죄질에 따라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 징역 10개월, 징역 8개월 등을 선고한 바 있다.


당시 제7태창호 사건은 전 국민의 관심이 미국 9.11테러로 쏠리는 바람에 사람들의 뇌리에서 금방 잊혀지고 말았다.


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