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인사이트] 김소영 기자 = "우리 나라가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굳세게 싸우시오"
중국 훈춘 지역의 3·1운동 지도자 황병길 선생이 죽음을 앞두고 남긴 유언이다.
황병길 선생은 1885년 4월 15일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출생, 20살까지 고향에서 생활하다 러·일전쟁을 계기로 시베리아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는 안중근이 조직한 의병대에 소속돼 중국 훈춘 지역 인근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벌였다.
그때 황 선생은 일본군 여럿을 홀로 사살하면서 '훈춘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일본군에게 그는 '공포'의 존재였다.
국가보훈처
이후 황 선생은 1919년 국내 3·1운동이 일어나자 노종환, 양하구 등과 함께 훈춘 지역의 평화적 대한독립만세운동을 개최했다.
이 대회는 황 선생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5천 명이 넘는 군중이 참여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했음에도 큰 사고 없이 평화적으로 완료됐다.
1919년 3월 말에 그는 대한국민의회를 설립했고, 노령 지역에서 무기를 확보하는데 힘써 소총, 탄환, 군자금을 활발하게 조달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활약은 일제가 "모든 반일투쟁이 황병길에게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할 만큼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황 선생의 독립운동이 지속적으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자 일제 영사관 측은 그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국내에 들어온 황병길 선생의 유해/ 연합뉴스
일제 영사관은 황 선생을 독립운동의 '중심'인물로 보고 체포에 총력을 기울였다.
황 선생은 일제와 친일파들의 수색을 피해 도주하다 결국 1920년 6월 1일 급성폐렴을 얻어 중국에서 순국했다. 그때 그의 나이 고작 35세 때였다.
중국에 머물던 그의 유해는 그로부터 72년이 지난 1992년 11월 18일이 돼서야 고국에 안치되며 영면에 들 수 있었다.
평생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떠난 황병길 선생에게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김소영 기자 soyoung@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