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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김지현 기자 = "사람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대한민국이 달라졌다. 대통령 한 명 바뀐 것뿐인데 현재 대한민국은 새로움과 신선한 충격에 휩싸여 있다.
취임 6일째를 맞은 문재인 대통령은 연일 소탈한 행보를 보여주며 평소 자신이 강조해왔던 국민과의 소통을 실천해나가고 있다.
국민들과의 셀카, 열린 경호, 참모들과 커피 산책, 내 옷은 내가 벗는다 등등
국민들과의 물리적 거리를 줄이고 개방적인 행보를 보이는 문 대통령의 '소탈' 행보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닮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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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권위'를 내려놓고 국민들 곁으로 다가가는 등 친근한 이미지의 지도자였기 때문.
물론 다른 부분이 있겠지만 문 대통령의 탈권위적인 모습은 국민들의 눈에 신선하게 비치며, 우리가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둔 미국을 부러워했듯 다른 나라 국민들로부터 동경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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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오바마 같은 대통령이 등장했다"
지난 6일 동안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를 본 한 누리꾼의 외침이다.
누리꾼의 이 외침처럼 연일 미담을 제조하고 파격적인 소통 행보를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
이 모습이 5년의 임기 동안 계속되길 바라며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인 소탈 행보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보인 행보의 닮은점을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1. 새 정부 첫 인선 직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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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비서실장이나 대변인을 통해 인선 발표를 해왔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새 정부 첫 인선(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임종석 신임 비서실장)은 자신이 직접 발표했다.
이는 오바마 전 대통령과 똑같은 행보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첫 임기를 시작하기 직전인 2007년 12월,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인선안을 직접 발표했다.
또 주요 현안에 관련한 입장을 밝힐 때는 직접 브리핑룸을 찾아 기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모습으로도 유명했다.
2. 커피 산책
(좌) gettyimages, (우) 연합뉴스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장면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킷을 벗고 신임 수석들과 함께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가벼운 산책을 했다.
이들은 즐거운 대화로 웃음꽃을 피워 보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했는데, 이 행보는 오바마 전 대통령도 선보인 바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2014년 6월 데니스 맥도너 비서실장과 함께 백악관 인근 카페에서 산 커피를 들고 거리 산책을 했다. 이밖에도 여러 번 참모진들과 커피 산책을 한 바 있다.
3. 국민들과의 직접 소통

오바마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SNS를 잘 활용했던 인물로 꼽힌다.
SNS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알았던 그는 수시로 대국민 메시지를 내고 국민들과의 소통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SNS 활용에 적극적이었으며, 취임 후에는 홍보수석실의 이름을 국민소통수석실로 변경해 국민과의 소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또 격의 없는 국민들과의 만남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4. 뛰어난 언변
(좌) 연합뉴스, (우) gettyimages
오바마 전 대통령은 9년 연속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남성 1위에 뽑힌 바 있다. 그 이유는 탁월한 언변과 소통, 화합의 리더십.
이 중 '언변'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언변이 오바마 전 대통령 만큼이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는 훨씬 나으며, 또 변호사 출신답게 전달력이 매우 좋고 필요한 말만 한다.
5. 걸크러쉬 영부인
(좌) gettyimages, (우)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기존 '영부인 상'의 통념을 깼다. 김정숙 여사는 대통령을 내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그래서 우린 김정숙 여사에게 '유쾌한 정숙씨', '따뜻한 정숙씨'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김정숙 여사의 이 '친근한 퍼스트레이디' 면모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셸 오바마는 남편의 재임 기간 동안 대외 활동에 적극적이었으며 특히 교육 문제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