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청춘불패'
[인사이트] 이별님 기자 = 촌스럽지만 실용성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현재까지 애용되는 '몸뻬바지'에는 일제 식민통치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민족의 대명절 설이 다가오면서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고향 집에 갈 생각에 들떠있다.
시골 고향 집에는 자주 뵙지 못해 더욱 그리운 조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정겨운 풍경을 볼 수 있다.
명절 때 시골 고향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할머니의 펑퍼짐한 '몸뻬바지'다.
KBS2 '포도밭 그 사나이'
허리와 허벅지까지는 통이 넓고 발목으로 내려갈수록 통이 좁아지는 이 바지는 할머니의 옷장 속 '필수템'이다.
'몸뻬바지'는 활동하기 편한 데다 입고 벗기도 편해서 오랜 시간 '국민 작업복'으로 그 자리를 지켜왔다.
TV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음 코드'로 다뤄지기도 했던 '몸뻬바지'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슬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몸뻬바지'란 이름은 일본어 '몬페(もんぺ)'에서 유래했다. 이는 일본 동북지방에서 여성들이 입던 헐렁한 바지를 의미한다.
연합뉴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몸뻬바지'는 서슬 퍼렇던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몸뻬바지'는 유행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까지 흘러들어온 것이 아니라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소개됐다.
일제는 식민지 말기 전시 체제 속에서 '국가총동원법'과 '비상시 국민 생활개선기준'을 제정해 조선 여성들에게 '몸뻬바지'를 입으라고 강요했다.
심지어 1944년에는 '몸뻬바지'를 입지 않은 사람의 전차 탑승이나 관공서 출입 등도 막았다.
연합뉴스
일제가 전시 체제에서 조선 여성들에게 언제든지 일을 시킬 수 있도록 편한 '몸뻬바지' 입기를 강요한 것이다.
당시 조선 여성들의 안목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다수는 '몸뻬바지' 특유의 디자인에 거부감을 느껴 입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일제의 강압에 '몸뻬바지'는 점차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고, 실용적인 측면 덕에 점점 보편적인 '작업복'으로 자리 잡았다.
런던 유니클로
'몸뻬바지'를 보고 일제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제 많지 않을 것이다. 명절 고향 풍경 하면 이 바지가 떠오를 만큼 우리에게 친숙하다.
친숙한 이미지와 뛰어난 실용성 덕에 이제는 우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몸뻬바지'.
이 때문에 '몸뻬바지'를 '일제 식민지 잔재'로 보고 무조건 배척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몸뻬바지'에 패션까지 통제당했던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있었음을 기억해보는 건 어떨까.
이별님 기자 byul@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