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뉴스데스크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제천 참사 당시 불법주차 차량이 구조작업을 지연시켰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소방관들이 주정차 차량을 신속히 제거할 수 없었던 열악한 소방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현행법상 소방관들은 출동로를 막는 차량을 임의로 이동시킬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소송에 휘말릴 수 있어 주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지난 21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 신고를 받고 도착한 소방 굴절차는 주차하는 데에만 15분이 넘게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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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차가 이동하고 고압선을 피하고 주변에 주차된 차량 3~4대를 옮길 때까지 구조 작업을 시작하지 못했다.
MBC 보도에 따르면 굴절차를 이동시키기 위해 주차된 차량을 옮긴 건 이를 보다 못한 시민들이었다.
이번 참사로 딸을 잃은 故 김다애 양 아버지는 "내가 벽돌로 차 유리를 깨 가지고 다른 분이 조수석 문 열고 타서 기어 풀어서 밀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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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들이 소방차 통행을 가로막은 차량을 과감히 처리하지 못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행 소방기본법 제25조에 따르면 소방관은 소방차의 통행이나 소방활동에 방해가 되는 주정차 차량, 물건을 제거하거나 옮길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생긴 손실은 시·도지사가 물도록 명시돼 있다. 그러나 법에서만 명시돼 있을 뿐 사실상 소방관들이 사비를 털어 보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구조 작업 중 불가피한 물적 손실이었음을 소방관 개인이 직접 입증해야 함은 물론, 만약 면책되지 않으면 승진에도 불이익이 있어 소방관들은 최대한 소송에 휘말리지 않으려 한다.
게다가 피해 보상을 위한 예산도 전혀 책정돼 있지 않아 사실상 소방관 개인이 모두 물어내야 하는 게 우리나라 소방법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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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소방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화재 진압, 구조 등 공무 중 발생한 사고나 물적 손실에 대해 소방관의 민·형사상 책임을 아예 면제해주는 내용이 담겼다.
소방관 개인의 형사 책임을 줄이고, 국가에서 소송도 지원해 이전보다는 개선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여전히 소방관들은 통행로를 막는 주정차 차량을 과감히 옮길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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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방관은 "왜 이렇게 됐는지 결국 소방관이 경위를 설명해야 하고, 아무래도 공무원이고 조직 사회이다 보니 (어려울 것 같다)"고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계속해서 소방관이 사비로 변제하는 시스템을 방치하면 소방관들은 적극적으로 구조 활동에 임할 수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소방관이 모든 책임을 떠안지 않도록 이번 개정안이 엄격하게 현실에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