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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오늘은 '매국노' 이완용 암살 시도한 이재명 의사가 순국한 날입니다"

인사이트(좌)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 / 국가보훈처 , (우) 이완용 / 연합뉴스


[인사이트] 배다현 기자 = 107년 전 오늘은 '매국노' 이완용의 암살을 시도한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가 순국한 날이다.


1890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난 이재명 의사는 15살이었던 1904년 미국 노동 이민사의 하와이 이민 모집에 응모, 하와이로 건너가 생활했다.


그는 1906년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미국 본토로 옮겨갔다가 당시 안창호를 중심으로 창립돼 미국에서 항일 민족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던 공립 협회에 가입했다.


1907년 일본이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정미 7조약'을 체결하는 등 민족의 자위력을 완전히 뺏어가자, 이에 분노한 공립 협회는 매국노의 숙청을 결정하고 실행자를 선발했다.


이때 자진해 나선 것이 당시 열여덟 살이었던 이재명 의사였다.


그 해 10월 일본을 거쳐 고국으로 돌아온 이 의사는 각지를 돌아다니며 동지를 모으고 매국노들을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1909년 12월 22일, 이 의사는 이완용을 비롯한 역적들이 종현 천주교당(현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인사이트1909 이완용 암살을 시도했던 종현천주교회당(현 명동성당) / 안중근 의사 기념관


이 의사는 성당 문밖에서 군밤 장수로 변장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인력거를 타고 지나가는 이완용에게 달려가 비수를 꽂았다.


그는 거사를 치른 후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오늘 우리의 공적을 죽였으니 정말 기쁘고 통쾌하다"고 말하며 만세를 불렀다. 그리곤 곁에 있는 이에게 담배를 청해 유유히 담배를 태우다 일본 순사에게 체포됐다.


그러나 이재명 의사의 칼에 찔린 이완용은 즉시 병원으로 후송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인사이트당시 이재명 의사의 사건을 보도한 대한매일신보 기사 / 한국언론진흥재단


이후 재판 과정에서 이재명 의사는 "피고와 같이 흉행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라는 재판장의 질문에 눈을 부릅뜨고 "나는 흉행이 아니라 당당한 의행을 행한 것이다"라고 고함을 쳤다.


이어 재판장이 "그러면 피고의 일에 찬성한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라고 묻자 "2천만 민족이다"라고 대답했다.


그의 호기로운 태도에 감동한 창밖의 방청객들은 "옳다!"고 외치며 유리창을 부수기도 했다.


인사이트서울 명동성당 입구에 위치한 이재명 의사의 거리 / 국가보훈처


해당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이재명 의사는 1910년 9월 13일, '24살'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됐다.


한편 2001년 12월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이재명 의사를 선정하기도 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영화 속 독립운동가 4인최근 한국 영화에 등장한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을 소개한다. 그들의 '죽음'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하며 잊혀져서도 안된다.

"의열단원 김지섭이 내 시험 망쳤다"는 학생에 '큰별샘'이 한 말 (영상)'큰별쌤'으로 더 잘 알려진 한국사 강사 최태성이 독립운동가 김지섭 의사에 대해 강의했다.


배다현 기자 dahyeon@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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