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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요' 종건이가 묻는다…"아직도 '벙어리 장갑'이라 부르세요?"

12년 전 '눈을 떠요'에 출연해 "훌륭한 사람 되겠다"던 꼬마는 어느새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 장애인을 위한 '엄지장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인사이트(좌) MBC '느낌표-눈을 떠요!', (우) 원종건 군 / 사진 제공 = 설리번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12년 전 MBC '느낌표-눈을 떠요!'에 출연해 각막 이식 수술을 받은 시청각장애 어머니는 눈을 뜨자마자 13살 난 아들 종건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종건아, 우리도 더 좋은 일 하는 사람이 되자"


이날 어머니는 곧바로 장기기증에 서약하며 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몸소 아들에게 보여주었다. 


방송 출연 후에도 기초생활수급자인 모자의 삶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후원 신청이 빗발쳤지만 어머니는 이를 모두 마다했고 오히려 고물을 주워 판 돈으로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인사이트MBC '느낌표-눈을 떠요!'


그런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본 꼬마 종건이는 매일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일 하는 사람이 될까'를 수없이 고민하며 살아왔다. 


어느새 26살 어엿한 청년이 된 원종건 군은 이제 어느 정도 그 답을 찾은 듯하다.


최근 원종건 군은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공익사업체 '설리번'을 설립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되고자 고군분투하는 젊은 청년들의 여정을 인사이트가 함께 따라가봤다.


인사이트어머니 박진숙 씨와 아들 원종건 군 / 사진 제공 = 설리번 


◆ 헬렌 켈러를 세상과 이어준 '설리번' 선생님, 우리는 그런 '설리번'이 되고 싶었다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았던 헬렌 켈러를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설리번' 선생님처럼 원종건 군과 그의 친구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어줄 하나의 매개체가 되고 싶었다. 


장애인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공익사업체 '설리번'은 그렇게 탄생했다.


◆ "아직도 '벙어리장갑'이라고 부르세요?"


우리는 언제부터 '벙어리장갑'이란 말을 썼을까. 벙어리는 '버벅거린다'라는 뜻의 옛말 '버워리'에서 파생됐다는 설이 있다. 


여기에 옛날 사람들은 말 못하는 장애인이 혀와 성대가 붙어있다고 믿어 4개 손가락이 붙어있는 장갑을 보고 '벙어리' 장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벙어리장갑'에 장애인을 낮춰 부르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 셈.


인사이트사진 제공 = 설리번


이에 대체어를 찾던 설리번 사람들은 항상 네 손가락과 떨어져 홀로 서 있는 '엄지'에 주목했다. 


"네 손가락과 떨어져 있는 '엄지손가락'은 마치 사회에서 소외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어요"_설리번 대표 박힘찬(24, 경희대)


이후 '설리번'은 벙어리 장갑을 '엄지장갑'으로 바꿔 부르는 캠페인을 알리기 위한 본격적인 단계에 착수한다. 


◆ 24시간 만에 '1000만원' 돌파…원래 최종 목표액은 300만원이었다 


설리번은 수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가 손등에 자수로 새겨진 '엄지 장갑'을 직접 제작했다. 


DAUM 스토리펀딩에서 일정 금액 이상 '엄지 장갑 프로젝트'에 후원해준 사람들에게 '답례품'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설리번 사람들은 최종 목표액을 소박하게 '300만원'으로 잡았다. 하지만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설리번


"아무도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반나절만에 500만원이 들어오더니 하루 만에 1000만원이 넘었어요. 눈이 번쩍 떠지더라고요." _ 설리번 배일우(26, 고려대)


자신을 농아인 아버지의 딸이라고 밝힌 한 후원자는 "제 입으로 차마 부르지 못했던 장갑의 이름을 부르게 해줬다"며 감사의 인사를 남기기도 했다. 


1월 17일 기준 엄지장갑 프로젝트 후원수는 1011건을 돌파했고, 후원금은 2,400만원을 넘어섰다. 


◆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상생의 가치를 실현하는 설리번 사람들


설리번에서 제작한 엄지 장갑은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동대문에서 장갑 도매상을 운영하는 최재우 사장님은 청년들이 좋은 일을 한다며 선뜻 좋은 가격에 거래를 맺어주었다. 


심지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며 꼬깃꼬깃한 낡은 봉투에 20만원을 담아 설리번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그 마음이 소중해 설리번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이 돈을 못 쓰고 있단다.


후원자들의 답례품으로 전해지는 엄지장갑은 일반 택배사가 아닌 사회적 기업 '두손 컴퍼니'를 통해 배송된다.


인사이트 왼쪽부터 박힘찬(25), 배일우(26), 김주현(26), 신재철(24), 원종건(26) 


이곳의 택배 기사님들은 일거리가 없어 거리를 떠도는 노숙인들로 이뤄져 있다. 엄지 장갑을 배송하는 동시에 노숙인들의 자활도 돕는 셈. 


이왕 좋은 일하는 김에 과정까지 더 좋았으면 하는 설리번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이렇듯 함께 살아가는 가치를 실현시키고 있었다.


◆ 걸어온 길 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아름다울 청춘들


최근 설리번에는 두 명의 친구가 새로 들어왔다. 


원래 엄지장갑 프로젝트의 후원자였던 신재철(24, 숭실대) 군과 김주현(26, 이화여대) 양은 좋은 일에 동참하고 싶다며 직접 설리번으로 연락해왔다고 한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잔뜩 안고 온 두 사람 덕분에 현재 설리번은 청각장애인들이 손쉽게 수화통역사를 호출할 수 있는 '어플'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은 해당 어플이 정착되면 청각장애인들이 훨씬 수월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인사이트


원종건 군은 말한다.


"설리번은 마치 카메라 '삼각대'같아요. 하나의 꿈을 받치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뿌리를 갖고 한 데 모이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모인 청춘들은 설리번을 만들어냈고, 기울어져 있는 세상을 조금씩 바꿔 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더욱 아름다울 이들의 청춘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