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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모아 소외계층 어루만지는 세탁소 사장님

4일 푸르메재단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의 재단 사무실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묵직한 상자 하나가 배달됐다.

 

"황무지 같은 세상에 던져진 동전들이 나눔이란 열매로 풍성히 거듭났으면 좋겠어요. 넉넉하진 않지만 어려운 이들을 돕는 즐거움을 아는 한 저는 부자입니다."


4일 푸르메재단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의 재단 사무실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묵직한 상자 하나가 배달됐다.

성인이 들기에도 버거운 상자엔 10원짜리부터 500원짜리까지 동전이 가득한 저금통 두 개가 있었다. 1천원짜리 지폐도 눈에 띄었다. 액수는 21만5천230원.

발신인 란은 비어 있었고 편지나 연락처도 없었다. 단서는 상자 겉봉에 쓰인 '김광호'라는 이름 석 자가 다였다.

한 직원이 우연히 상자를 포장한 종이를 뒤집어 종이가 세탁소 광고지였음을 발견했다. 이들은 광고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결국 주인공을 알아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10평 남짓한 작은 세탁소를 10년째 운영 중인 김광호(56)씨. 그가 손님들과 함께 2년 넘게 십시일반 모은 '특별한' 동전이었다.

김씨는 저금통을 세탁소에 두고 동전이 생길 때마다 집어넣었다. 이를 본 손님들도 "좋은 일 함께하자"며 덩달아 동전을 넣었다.



김씨는 한때 인천에서 어엿한 입시학원을 운영하던 '원장 선생님'이었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사업실패를 맛봤다.

재기를 꿈꾸다 학부모를 상대하던 노하우를 살려 주부가 단골인 세탁소를 열었다. 그때 우연히 서점에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였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수입 1%를 나누면 정부가 못 돌보는 소외계층을 돌볼 수 있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기부인생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인생의 바닥에 떨어지니 어려운 이들이 보이더군요. 제가 나누는 적은 돈이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날 기회가 되겠죠."

그러다 박 시장이 정치권에 입문하자 '기부단체 수장으로서 순수함을 잃었다'는 실망감에 기부를 중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차곡차곡 쌓여만 가는 동전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때마침 어린이 재활병원 건립 활동을 하는 푸르메재단을 알게 됐다.

김씨는 세탁 일감을 받아오는 한 공기업이 올 연말에 나주 혁신도시로 이전하게 돼 이를 따라 남양주 세탁소를 정리하고 나주로 이사한다.

"땅에 뿌려진 씨앗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액수는 작지만 이 동전들이 소외된 어린이들이 꿈꾸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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