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서울지방경찰청'
[인사이트] 이유라 기자 = 청와대로 향하는 '100만' 군중의 발길을 막았던 경찰에 시민들의 분노가 커진 가운데,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 편에 서다 목숨까지 잃었던 한 경찰관의 사연이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 세력의 강경 진압에 반대하며 시민의 편에 서다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고 안병하 경무관의 사연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980년 광주서 민주화운동이 발발하자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경찰의 강경 진압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전남 지역의 치안을 총 책임지던 고 안병하 당시 전라남도 경찰국장은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라"는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오히려 일선 경찰들로부터 총기를 회수할 것을 명령했다.
당시 안 경국장은 "상대는 우리가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시민인데 경찰이 어떻게 총을 들 수 있느냐"며 명령 거부에 대한 이유를 밝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나아가 안 경국장을 중심으로 광주 경찰들은 계엄군에 의해 부상당한 시민들을 치료하고 식당에 데려가 밥을 사주고 옷을 갈아입히는 등 시민의 편에 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시위를 하던 광주 시민들 역시 "경찰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며 광주 경찰들을 향해 "민주경찰이다"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고 안병하 경무관의 묘역 앞에서 묵념하는 경찰들 / 티스토리 '서울지방경찰청'
그러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끝난 후 안 경국장은 '직무유기 및 지휘 포기' 혐의로 체포되어 10여일 동안 혹독한 고문과 고강도 심문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안 경국장은 자진 사직이란 명목으로 경찰 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것은 물론, 고문 후유증에 생활고까지 겹쳐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다 지난 1988년 10월 10일 광주의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지난 1987년 6월 항쟁 이후 신군부 세력이 물러가면서 안 경국장은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어 지난 2005년에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유해가 안장되며, 지난 2006년에는 국가유공자로 등록됐다.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무릅쓰고 시민의 편에 섰던 고 안병하 경찰관의 사연에 많은 시민들이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