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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계속되는데 아이들 교과서에는 간단한 이론만 서술

현행 교육과정이나 교과서에서 '지진'에 관한 내용이 간략한 이론 위주에 그치는 등 현실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이트(좌) 경주시 구정동 불국사초 어린이가 대피한 모습, (우) 여진을 감지한 울산시 남구의 유치원생들이 인근공원으로 대피하는 모습 / 연합뉴스


경주발 지진공포가 계속되면서 재난 교육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하지만 현행 교육과정이나 교과서 속 내용은 간략한 이론 위주에 그치는 등 현실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화재나 태풍, 홍수 등 다른 재난과 달리 지진의 경우 '우리나라는 안전지대'라는 인식이 큰 탓으로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세월호'라는 대형 사건을 겪었음에도 각종 재난 안전에 관한 우리 학교 교육이 여전히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현행 교육 과정상 지진교육, 분량도 적고 형식적


21일 교육부에 따르면 현행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지진 관련 내용은 초등학교 1∼2학년 과정엔 아예 없고, 초등 3학년 이후부터 등장한다.


초등 3∼4학년은 과학, 5∼6학년은 체육, 중학교는 과학과 체육, 고등학교는 과학 등 교과에서 지진, 화재, 홍수 등 각종 재난 발생 시 대처법과 발생 원리 등을 가르치는 식이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이 교육과정에 따라 쓰인 교과서는 초등 과학을 빼고는 모두 검정 교과서여서 출판사별로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지진 발생의 원인과 피해 사례, 대처법 등을 소개한다.


일례로 초등 3∼4학년 과학 교과서는 지진의 발생 원인과 함께 '건물 안에서는 전기나 가스를 차단하고 단단한 탁자 밑으로 대피합니다' '거리에서는 유리창이나 물건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머리를 보호하면서 넓은 장소로 이동합니다' 등 대처법을 간략한 문구, 삽화로 설명한다.


중학교 체육 교과서에 실린 재난사고 관련 기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는 지구과학 교과서에서 지진과 화산을 다루면서 지진 예방법을 소개한다.


교학사 지구과학I 교과서를 보면 '구조물을 지을 때 진동이나 지표 파열에 잘 견디도록 설계하고 지붕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기와 대신 양철을, 창문이나 건물에는 대각선 지지대를 설치한다' 등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교과서 기술 대부분이 분량도 적을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발생 시 대처보다는 원인이나 예방에 초점을 맞추는 등 실제 '닥칠 수 있는 현실'을 가정한 기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대처방법 역시 '탁자 밑으로 숨는다' '머리를 보호한다' 등 지극히 상식적이고 간략한 수준에 불과하다.


◇ 세월호 이후 안전대책 쏟아졌지만…매뉴얼은 여전히 무용지물


교육부는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이러한 형식적인 교육 내용을 개선하고자 실전 위주의 안전 교육 시간을 늘리고 교육부 내 안전 정책을 총괄하는 국 단위 조직까지 신설하는 등 전면적인 대책을 수립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올해 3월 새 학기부터 유치원과 초중고교에서 생활안전, 교통안전, 재난안전 등 7개 영역별 안전 교육을 학년당 연간 총 51시간 이상 하도록 했다.


이 가운데 지진 관련 내용은 연간 총 6시간 이상으로 배정된 재난안전 영역에서 화재 등 각종 사고, 테러, 붕괴 등 여러 재난 유형과 함께 가르치게 돼 있다.


인사이트규모 3.5 여진에 운동장서 점심 먹는 경주 초등학생들 / 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경주 지진 당시 상당수 학교에서 대피해야 할지 말지조차 판단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교육부로서는 강화된 교육 지침이 여전히 무용지물이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경북교육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첫 지진이 발생한 12일 경북지역에서 88개 학교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었으나 이중 절반에 달하는 42개 학교가 대피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첫 강진 이후 수차례 계속된 여진 때도 울산 등 일부 지역에서 어떤 교실은 아이들을 책상 밑에 숨게 하고, 어떤 교실은 운동장으로 대피하게 하는 등 일관된 매뉴얼 없이 교사에 따라 대피 요령이 제각각이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진 등 재난 대처 매뉴얼은 배포돼 있지만 실제 상황에 대비해 몸으로 체득하는 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다.


교육부는 앞서 2012년 재난 유형별 대처 매뉴얼을 책자로 500여부 만들어 전국 시도 교육청과 지원청에 배포하고, 이를 각 학교에까지 전파하도록 했다.


그러나 매뉴얼 책자 상당수가 교무실 한 켠에 그대로 쌓여 있거나 교실 단위로까지는 배포가 안 된 것으로 교육부는 파악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국 2만여개 학교 수에 비하면 500여부가 부족해 파일을 내려받아 따로 제작하거나 공유하도록 조치했지만 실제 점검을 나가보면 배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11월까지 전국 모든 학교의 각 교실 단위로까지 매뉴얼 배치를 의무화하는 등 추가적인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또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내년부터는 초등 1∼2학년용 '안전한 생활' 교과서를 별도 제작할 방침이다. 2018년부터 초등 3학년∼고교의 관련 교과에 '안전' 관련 내용을 별도 단원으로 신설하는 등 교과서상 안전 교육도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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