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초록빛 언덕, 투명하게 빛나는 유리 질감의 버튼, 형광색 물방울과 열대어 장식. 윈도 XP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프루티거 에어로(Frutiger Aero)' 디자인 감성이 미국 Z세대 사이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24일(현지 시간) 비즈니스인사이더 보도에 따르면, 크리에이터 새미 콘티(22세)가 침실을 프루티거 에어로 스타일로 꾸민 영상을 인스타그램과 틱톡에 공개하며 70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확보했다고 전했다.
콘티의 방은 파란색과 형광 초록·주황·노란색이 조화를 이룬다. 덩굴 장식, 물방울 오브제, 해파리 모형이 곳곳에 배치됐고, 라바램프와 버블램프가 은은한 빛을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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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식 열대어가 움직이는 수족관 조명도 눈길을 끈다. 닌텐도64 카트리지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케이스, 옛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로고 모양 거울까지 더해지며 2000년대 디지털 감성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루티거 에어로는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기업 광고와 컴퓨터 인터페이스에 광범위하게 활용된 디자인 양식을 뜻한다.
유리처럼 투명하고 반짝이는 질감에 푸른 하늘, 초원, 물방울, 열대어 같은 자연 이미지를 결합한 점이 특징이다. 자연과 첨단 기술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낙관적 미래상을 표현하는 데 자주 사용됐다.
용어는 '프루티거(Frutiger)' 서체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비스타의 '에어로(Aero)' 디자인에서 가져왔다. 2017년 소비자 미학 연구기관 'Consumer Aesthetics Research Institute' 창립 멤버이자 연구자인 소피 시안이 처음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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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평범한 기업 디자인으로 취급받던 이 감성은 2023년 이후 온라인에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틱톡에서 '#frutigeraero' 관련 콘텐츠 조회수가 수백만회를 돌파했고, 디스코드와 레딧에는 전용 커뮤니티가 생겨났다.
프루티거 에어로 팬들 사이에서 윈도XP의 대표 배경 화면 '블리스(Bliss)'는 상징적 이미지로 통한다. 초록빛 언덕과 파란 하늘이 펼쳐진 이 풍경이 당시의 밝고 희망적인 디지털 미래를 상기시킨다는 이유에서다.
프루티거 에어로가 재조명받는 배경에는 단순한 향수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콘티는 이 감성이 자신에게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린 시절 기술이 인간의 창의성을 돕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세상이 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주변 디자인이 점차 매끈하고 현대적인 회색빛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 현상이 특정 제품에 대한 그리움보다 당시 디자인이 담았던 '낙관적 미래상'과 연결돼 있다고 본다. 프루티거 에어로 커뮤니티 구성원 30명 이상을 인터뷰한 콩코디아대 박사과정 연구자 리치 스리라차니콘은 사람들이 특정 기기를 그리워하기보다 프루티거 에어로 특유의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에서 위안을 찾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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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기술이 환경 파괴, 일자리 감소, 감시 문제 등 부정적 논쟁과 맞물리는 상황에서 일부 젊은 층이 자연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던 과거 이미지에서 더 긍정적인 미래상을 발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이 트렌드는 실제 상품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주얼리 브랜드 '언저스트 주얼리(Unjust Jewelry)' 창업자 오스틴 호리는 프루티거 에어로에서 영감을 받은 향수를 출시해 1만병 이상 판매하는 성과를 올렸다.
마이크로소프트도 과거 윈도XP 디자인을 활용한 액세서리 협업 제품을 선보이며 2000년대 디지털 감성을 상품에 접목하고 있다.
최근 전자제품 디자인에서도 선명한 색상을 강조하는 흐름이 감지된다. 형광 초록색을 전면에 내세운 엑스박스 디자인이나 애플의 컬러풀한 보급형 맥북이 프루티거 에어로 팬들 사이에서 과거의 밝은 테크 감성을 연상시킨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무채색과 미니멀리즘이 오랫동안 디지털 디자인의 주류였다면, 이제 일부 Z세대는 2000년대의 과감한 색상과 자연 이미지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고 있다. 한때 구식으로 치부됐던 '윈도XP 감성'이 20여년 만에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부활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