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D램·4나노 공정 결합한 HBM4...설계부터 사업부 공동 대응
이재용, 패키징 현장서 생산·품질 점검...AMD와 고객 접점 확대
HBM 공급 넘어 위탁생산 협력 논의...내년 맞춤형 HBM 샘플 계획
삼성전자가 올해 양산 출하한 HBM4에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기술이 함께 들어갔다. 데이터를 저장하는 D램은 메모리사업부가, 칩 아래에서 데이터 연결을 맡는 베이스 다이는 파운드리사업부가 만든다. 이를 쌓고 연결하는 패키징까지 삼성 내부에서 이뤄진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 / 뉴스1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6주기를 맞는 삼성의 현재 모습이다. 선대 재임기부터 축적한 반도체 기술은 AI 고객의 요구에 맞춰 함께 쓰이고 있다. 오는 27일 취임 4주년을 맞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는 이 결합을 더 많은 고객과 거래로 이어가는 일이 남아 있다.
삼성은 23일 경기 수원 선영에서 이 선대회장의 6주기 추도식을 연다. 기일인 25일을 이틀 앞둔 일정이다. 이 회장을 비롯한 유족과 주요 경영진이 참석할 예정이다.
선대가 키운 반도체, AI 메모리에서 기술을 합치다
이 선대회장이 1993년 신경영 선언은 전설로 통한다. 그는 양에서 질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생산량을 늘리는 데 익숙했던 조직에 제품의 완성도와 경쟁력을 다시 묻는 요구였다.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 휴대전화와 무선전화기, 팩스 등 약 15만대, 500억원어치 제품을 폐기한 사건은 그 원칙을 보여줬다.
반도체에서는 기술 축적이 시장 지위로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2002년 낸드플래시 시장 1위에 올랐고, 2013년에는 메모리 셀을 수직으로 쌓은 V낸드 양산에 성공했다. 평면에서 미세화하던 반도체를 위로 쌓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후에도 이어진 투자는 AI 메모리에서 새로운 조합을 만들고 있다. HBM은 여러 장의 D램을 쌓는 제품이다. 저장 공간을 늘리는 것과 함께 AI 가속기와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고, 전력 소모와 발열을 줄여야 한다. 아래쪽에 놓이는 베이스 다이의 역할이 커진 이유다.
삼성은 지난 2월 12일 양산 출하를 발표한 HBM4에 10나노급 6세대인 1c D램과 자체 파운드리 4나노 공정을 적용했다. 메모리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파운드리 공정까지 투입한 선택이다. 이어 5월 29일에는 차세대 HBM4E 12단 샘플 출하를 발표했다.
사진제공=삼성
메모리·파운드리 공동 설계...이재용이 찾은 패키징 현장
기술을 한 회사 안에 보유했다고 제품이 저절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설계와 생산 일정부터 맞아야 한다.
삼성 파운드리사업부 기술개발실장 구자흠 부사장은 지난 7월 회사 공식 인터뷰에서 HBM 개발에 메모리·파운드리·TSP 조직이 설계 단계부터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TSP는 반도체의 테스트와 패키징을 담당한다. 각 조직이 함께 속도와 전력, 발열, 수율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베이스 다이 공정을 처음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전 부문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기존 모바일 반도체와 다른 공정상의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삼성은 이런 공동 개발이 제품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비용을 낮추는 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2023년 2월 천안·온양 사업장에서 차세대 패키징 경쟁력과 연구개발, 중장기 사업 계획을 점검했다. 당시 간담회에는 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장이 함께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재 양성과 미래 기술 투자에 조금도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HBM 등 첨단 패키징 기술이 적용된 생산라인도 살폈다. 올해 6월 23일에는 천안사업장도 방문했다. 생산 계획과 기술 개발 진행 상황을 보고받고 HBM 패키징 라인의 생산·품질 관리 체계를 점검했다. 메모리와 파운드리에서 만든 칩을 고객에게 보낼 제품으로 완성하는 현장이다.
AMD에 HBM4 공급...다음 거래는 파운드리
이재용 회장 / 뉴스1
사업부 간 협업의 성과는 고객과의 거래에서 확인된다.
삼성은 지난 3월 AMD와 차세대 AI 메모리·컴퓨팅 분야 협력을 확대하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AMD의 차세대 AI 가속기 '인스팅트 MI455X'에 들어갈 HBM4 우선 공급업체로 지정됐다. 서버용 CPU와 AI 서버 플랫폼을 위한 DDR5 메모리 협력도 포함됐다.
양사는 AMD 차세대 제품을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 협력도 논의하기로 했다. HBM에서 확보한 고객 관계가 다른 반도체 사업으로 넓어질 여지가 생긴 것이다. 다만 당시 발표에서 HBM4는 우선 공급업체 지정을 명시했고, 파운드리는 협력 논의 단계로 구분했다.
경쟁사도 메모리와 파운드리 기술을 묶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4년 TSMC와 HBM4 개발 및 첨단 패키징 협력을 발표했다. 두 회사의 전문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삼성은 HBM4에 자체 D램과 파운드리 공정을 적용해 대응했다. 고객이 요구하는 성능과 공급 일정을 맞추기 위한 서로 다른 접근이다.
삼성 HBM에 자체 파운드리 공정이 쓰이는 것과 외부 고객의 위탁생산 물량을 확보하는 것은 별도의 성과다. HBM에서 입증한 기술 결합이 고객의 다른 제품 발주까지 이어져야 사업의 폭도 넓어진다.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을 함께 보유한 삼성의 강점은 그 과정에서 다시 평가받게 된다.
삼성전자는 2027년부터 고객별 요구에 맞춘 커스텀 HBM 샘플을 순차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객의 AI 가속기 구조와 사용 환경에 맞춰 용량·속도·전력 특성·인터페이스 등을 설계하는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