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28일(금)

임기 끝난 젤렌스키, 전시 선거 거부... "선거하면 나라 분열시킬 쓰나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시 선거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임기가 이미 종료된 상황에서도 "전쟁 중 선거는 나라를 분열시킬 쓰나미"라며 선거 실시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최근 급부상한 정치 라이벌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계엄령을 근거로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23일(현지 시간)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 35주년을 이틀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전쟁 상황에서 선거는 엄청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당장 선거를 치른다면 우크라이나를 분열시킬 쓰나미가 된다"며 "만일 우리가 나라를 파괴하고 싶다면 전시 선거를 치르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18일 미하일 페도로우 전 국방장관이 유튜브 영상을 통해 전시 선거 실시를 요구한 데 대한 공개 반박이다. 페도로우 전 장관은 당시 "민주주의가 러시아에 인질로 잡혀선 안 된다"며 "장기전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가 완전한 민주적 절차를 재개할 수 있도록 합법적이고 안전하며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사이트 2026년 7월 7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나토 32개 회원국 정상들과 우크라이나와 같은 나토 동맹국 정상들이 터키 수도 앙카라에 모여 국방비 지출 목표, 방산 산업 생산, 우크라이나 지원 등 다양한 현안을 논의했다. / GettyimagesKorea


젤렌스키 대통령은 과거에도 선거를 치르라는 압력을 받았지만 어떤 동맹국도 안전하고 합법적이며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거를 실시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공정하고 안전한 선거 진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그의 정통성 문제는 갈수록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2019년 5월 대선에서 승리해 취임했으며 2024년 5월 5년 임기가 종료됐어야 했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내려진 계엄령을 이유로 선거를 건너뛴 채 계속 재임 중이다. 여론도 녹록지 않다. 이달 초 발표된 우크라이나 사회연구센터(Socis) 설문조사에서 발레리 잘루즈니 주영국 대사가 신뢰도 1위를 차지했고 페도로우 전 장관이 2위였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6위에 그쳤다.


무인항공기(드론)를 앞세운 전쟁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끌던 페도로우 전 장관은 지난달 돌연 해임됐다. 당시 이 결정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불러왔으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페도로우 전 장관을 겨냥해 "그는 스스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거나 누군가에게 떠밀리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그를 향한 대규모 시위에 대해서도 군인에 대한 "무례한" 태도라고 지적하며 "언제부터 마케팅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보다 더 중요해졌나"라고 반문했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위성 통신망을 러시아 영토 내 작전에 활용하는 방안을 놓고도 불거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올해 초 페도로우 전 장관이 러시아 내에서 스타링크를 활용해도 된다는 스페이스X 소유주 일론 머스크의 허락을 받았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종 승인만 받으면 된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안을 공유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머스크는 러시아 영토 내 스타링크 사용을 거부했고 당신이 나를 속였다"라는 반응을 받아 백악관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다만 머스크가 러시아로 날아가는 드론에 스타링크를 사용하는 것을 긴장 고조 행위라며 꺼리고 있지만 "추가적인 논거를 접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중국과 손잡고 개발 중인 스타링크 유사 대안 위성 인터넷 통신 시스템은 올해 12월 완료될 것으로 보이며 우크라이나도 이에 대응해 유럽과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사이트2026년 8월 20일(현지 시간) 러시아 미사일 공격 후 우크라이나 키이우 주민들이 마당에 흩어진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밤새도록 이어진 대규모 미사일 공격으로 도시 곳곳의 아파트와 창고가 피해를 입었고, 어린이 병원과 학교도 손상되었다. / GettyimagesKorea


전황에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러시아가 흑해를 통과하는 농산물 운송 선박에 대한 공격을 멈추자는 휴전을 제안했지만 러시아는 자국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공습 금지 보장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그는 러시아가 오는 9월 총선을 치른 후 병력 30만명을 추가로 징집할 계획으로 보이며 내년에는 50만명 규모의 병력 증강이 추진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올해 요청한 방공 요격미사일이 360기이지만 실제로 제공이 예상되는 규모는 264기에 불과한 반면 러시아는 연간 최대 1300기의 탄도미사일 생산능력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 국방비 지출이 예상보다 높아 270억달러(약 37조4200억원)가 추가로 필요하다고도 호소했다. 재정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이날 발트 3국과 북유럽 정상들은 키이우에 모여 우크라이나 지지를 재확인했다.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는 내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액이 사상 최고치였던 올해 90억달러(약 12조5000억원)와 같은 규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통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계엄령을 이유로 선거를 무기한 연기하는 상황에서 정치 라이벌들의 도전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여론도 흔들리고 있다. 전쟁 수행과 민주주의 절차 사이에서 우크라이나가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