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수 SPC그룹 부회장이 오랜 기간 추진해온 파리바게뜨의 글로벌 현지화 전략이 미국 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2005년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파리바게뜨는 20여년 만에 현지 300호점을 넘어섰고, 미국 사업 매출은 4년 사이 3배 이상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매출 증가와 함께 흑자 전환에도 성공했다.
현지 프랜차이즈 시장에서의 위상도 높아졌다. 파리바게뜨는 미국 비즈니스 전문매체 '앙트러프러너(Entrepreneur)'가 선정한 '2026 Franchise 500'에서 전체 29위에 올랐고 베이커리 카페 부문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단순히 한국에서 성공한 베이커리 브랜드를 미국에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현지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찾고 현지 가맹사업자가 직접 투자하는 프랜차이즈로 사업 구조를 바꿔온 허 부회장의 전략이 결실을 맺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0여년 글로벌 확장 지휘... 허진수 부회장, 미국 300호점으로 결실
허 부회장은 SPC그룹에서 오랜 기간 글로벌 사업을 맡아 파리바게뜨의 해외 진출을 주도해왔다. 미국을 비롯해 중국과 동남아시아, 유럽 등 해외시장 개척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며 브랜드의 글로벌 사업 기반을 닦아왔다. 최근에는 그룹 차원의 글로벌 사업을 전면에서 이끌며 북미 시장을 핵심 성장축으로 육성하는 데 힘을 싣고 있다.
허진수 SPC그룹 부회장 / 사진 제공 = SPC그룹
허 부회장이 미국 시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둔 전략은 '현지화'다. 한국에서 성공한 제품과 매장 운영 방식을 그대로 이식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국 소비자의 생활 방식에 맞게 브랜드를 재해석하고, 현지 가맹점주와 공급망까지 아우르는 사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같은 전략은 구체적인 실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파리바게뜨의 미국 사업 매출은 2021년 1,830억 원에서 2025년 5,850억 원으로 4년 새 3배 이상 급증했다. 특히 2025년 미국 사업 매출은 전년 대비 약 30% 증가하며 흑자로 전환했다. 올해 1분기 북미 전체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31.2% 증가했다.
외형 성장뿐 아니라 기존점의 매출과 방문객 수가 장기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미국 매장의 점포당 평균 연매출은 약 300만 달러, 약 42억 원 수준으로 국내 매장 평균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투자 기간을 거친 미국 사업이 이제 점포 확대와 수익성 개선을 동시에 이루는 성장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미 지역 파리바게뜨 매장 전경/ 사진 제공 = SPC그룹
파리바게뜨의 미국 사업 확장 과정에서도 허 부회장의 전략적 색깔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파리바게뜨는 2005년 로스앤젤레스에 첫 매장을 열며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뉴욕에서는 2010년 한인타운에 매장을 내며 약 4년간 현지 시장을 분석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유동인구가 많고 관광객까지 몰리는 맨해튼 40번가에 진출해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이어 사무실 밀집 지역과 고급 주택가 등 인접 지역으로 순차적으로 매장을 넓혀가며 지역 내 브랜드 이미지를 단계적으로 구축했다. 서부에서는 LA와 실리콘밸리를, 동부에서는 뉴욕과 보스턴 등을 거점으로 삼은 뒤 플로리다와 오하이오, 하와이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최근에는 사업 영역이 국제공항까지 확대됐다. 파리바게뜨는 올해 6월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제공항에 미국 첫 공항 매장을 열며 미국 300호점을 돌파했다. 현재 미국 32개 주에서 310개 안팎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국제공항은 일반 상권보다 높은 수준의 운영 능력이 요구되는 대표적인 특수 상권이다. 다국적 소비자를 상대해야 하고 엄격한 보안과 품질, 공급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글로벌 외식 브랜드들이 경쟁하는 국제공항에 진입했다는 점은 파리바게뜨가 현지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운영 역량과 브랜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상징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K'보다 '동네 빵집'... 현지화가 만든 차별화
파리바게뜨가 미국에서 빠르게 성장한 배경에는 K푸드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현지 소비자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침투하는 전략이 자리한다.
파리바게뜨 미국 홈페이지 캡처
파리바게뜨 미국 홈페이지가 브랜드를 '동네 베이커리 카페(Your neighborhood bakery café)'로 소개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미국 소비자에게 한국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기보다 매일 들를 수 있는 동네 베이커리 카페로 포지셔닝한 것이다.
제품 전략 면에서는 파리바게뜨가 오랜 기간 축적한 '토털 베이커리' 경쟁력을 활용했다. 도넛이나 커피, 샌드위치 등 한정된 품목에 집중하는 미국 체인들과 달리, 파리바게뜨는 케이크와 크루아상, 페이스트리, 샌드위치, 음료 등 폭넓은 제품군을 한 매장에서 제공한다.
고객이 트레이와 집게를 이용해 다양한 빵을 직접 고르는 한국식 베이커리 문화도 차별점으로 활용했다. 동시에 현지 고객에게 친숙한 제품을 기본으로 하되, 불고기 등 K-BBQ를 활용한 제품이나 한국 식문화를 접목한 메뉴를 더해 브랜드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K'라는 수식어 자체를 내세우기보다, 한국 베이커리 산업이 오랜 기간 쌓아온 제품 다양성과 운영 노하우를 미국인의 소비 방식에 맞게 현지화한 셈이다.
허 부회장이 추구해온 글로벌 전략 역시 이 같은 방식에 가깝다. 한국 본사의 경쟁력을 일방적으로 해외에 이식하기보다, 현지에서 장기간 살아남을 수 있는 사업 모델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에서 파리바게뜨 홀리데이 시즌 케이크를 맛보고 있는 진행자들의 모습. / NBC
그의 현지화 전략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또 다른 지표는 미국 가맹사업자들의 움직임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다양한 배경의 현지 사업자들이 파리바게뜨와 다점포 개발계약을 맺고 있다. 다점포 개발계약이란 한 사업자가 특정 지역에서 여러 매장을 순차적으로 출점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단일 점포 계약보다 투자 규모가 크고 장기간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만큼, 브랜드의 성장 가능성은 물론 점포 수익성과 공급망, 교육 시스템 등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성사되기 어렵다.
파리바게뜨가 미국 현지에서 소비자뿐 아니라 가맹사업자의 선택까지 받고 있다는 것은, 사업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미국에 진출한 한국 베이커리'라는 성격이 강했다면 현재는 미국 소비자가 찾고 미국 사업자가 직접 투자하는 현지 프랜차이즈에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 프랜차이즈 업계의 평가도 이를 뒷받침한다. 파리바게뜨는 'Entrepreneur'의 'Franchise 500' 순위에서 2024년 61위, 2025년 42위, 2026년 29위로 꾸준히 순위를 끌어올렸다. 2026년에는 베이커리 카페 분야 1위를 기록했다. 매출과 점포 수, 가맹사업 확대, 프랜차이즈 평가가 동시에 개선되면서 파리바게뜨가 미국 시장에서 주류 프랜차이즈로 안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텍사스 공장부터 스포츠 마케팅까지... '현지 완결형' 브랜드로
파라바게뜨 미국 텍사스 제빵공장 예상 조감도 / 사진 제공 = SPC그룹
허 부회장의 미국 전략은 이제 점포 확대를 넘어 현지 생산 인프라 구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SPC그룹은 미국 텍사스에 북미와 중남미 시장을 아우를 제빵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다. 공장은 단계적으로 생산라인을 확대해 2030년까지 연면적 약 2만8000㎡, 연간 최대 5억개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이는 파리바게뜨 미국 사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투자로 평가된다.
현재까지는 한국 본사의 기술력과 공급망을 기반으로 미국 시장을 확대했다면, 현지 공장 가동 이후에는 미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 가맹점에 공급하고 현지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사업 구조를 갖추게 된다. 한국에서 만든 것을 해외에 판매하는 '수출형 사업'에서 현지에서 생산·공급·판매가 모두 이뤄지는 '현지 완결형 사업'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현지 생산기지는 빠르게 증가하는 북미 매장에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매장이 수백개에서 1000개 수준으로 늘어날 경우 기존 공급망만으로는 제품 품질과 물류 효율성을 동시에 유지하기 어렵다.
허 부회장이 점포 수 확대에 앞서 생산 인프라 구축에 나선 것도 향후 북미 사업 규모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텍사스 공장은 미국 전역뿐 아니라 향후 중남미 시장까지 지원하는 생산·물류 거점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BMO 스타디움에서 파리바게뜨 마케팅본부장 김연정 상무, 파리바게뜨 허진수 부회장, LAFC 래리 프리드먼 공동회장, 파리바게뜨 미주사업부 캐시 샤브네 CMO / 사진 제공 = 파리바게뜨
허 부회장은 현지 생산과 가맹사업뿐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마케팅에서도 글로벌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SPC그룹은 파리바게뜨를 앞세워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PSG), 영국 토트넘 홋스퍼 등 글로벌 스포츠 구단과의 협업을 확대해왔다.
미국에서는 메이저리그사커(MLS) 구단 LAFC와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현지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스포츠 마케팅은 특정 국가나 인종에 국한되지 않고 대중에게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브랜드 구축에 효과적인 수단으로 꼽힌다. K푸드나 한류 팬층에만 의존하지 않고 미국 현지 대중에게 친숙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매장 출점과 제품 현지화, 현지 가맹사업, 생산기지 투자, 스포츠 마케팅까지 모두 '현지 대중 브랜드'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 목표는 1000호점... 허진수 부회장의 승부수
허 부회장이 바라보는 다음 목표는 북미 1000호점이다. 300호점 돌파가 파리바게뜨가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라면, 1000호점은 명실상부한 북미 주요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로 도약하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서는 출점 속도뿐 아니라 가맹점 수익성과 제품 품질, 공급 안정성을 동시에 유지해야 한다. 텍사스 공장을 비롯한 현지 인프라 확대가 향후 성장의 핵심 변수로 꼽히는 이유다.
파리바게뜨의 미국 사업은 허 부회장의 글로벌 경영 전략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시험대이기도 하다. 2021년 1,830억 원이었던 미국 매출은 2025년 5,850억 원으로 늘었고, 적자를 감수하던 투자 단계에서 흑자 사업으로 전환됐다.
파리바게뜨 미국 300호점 ‘필라델피아 국제공항점’ 전경 / 사진 제공 = SPC그룹
20여년 전 한인 소비자에게 익숙한 한국 베이커리로 시작했던 파리바게뜨는 이제 미국 32개 주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국제공항에 입점하며, 현지 사업자들이 다점포 투자를 결정하는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그동안 허 부회장이 강조해온 '글로벌 현지화'가 숫자로 증명되기 시작한 셈이다.
앞으로 텍사스 생산기지를 중심으로 미국 내 생산·공급 체계가 본격화되고 1000호점 확장 계획까지 현실화할 경우 파리바게뜨의 미국 사업은 단순한 해외 진출 성공 사례를 넘어 SPC그룹의 글로벌 사업 모델 자체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한국 베이커리를 세계에 알리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각국 소비자의 일상에 자리 잡는 글로벌 베이커리'를 만들겠다는 허진수 부회장의 승부가 본격적인 결실을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