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39·인터 마이애미)의 축구 인생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한 아버지 호르헤 메시가 별세했다. 향년 68세.
아르헨티나 로사리오를 연고로 하는 뉴웰스 올드 보이스는 현지시간 8일 호르헤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호르헤는 최근 수개월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남미축구연맹(CONMEBOL)을 비롯해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등 축구계도 잇따라 애도를 표했다.
호르헤는 단순히 세계적인 축구 선수의 아버지로만 살지 않았다. 어린 아들의 가능성을 믿고 아르헨티나를 떠났고, 메시가 세계 최고의 선수로 올라선 뒤에는 에이전트로 계약과 이적, 사업을 맡았다. 메시의 20여년 선수 생활에서 경기장 밖의 일을 책임진 사람이었다.

그 동행의 출발점은 2000년이었다.
당시 13세였던 메시는 성장호르몬 결핍으로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치료비를 계속 부담하기 어려워지자 가족은 유럽으로 눈을 돌렸고, 호르헤는 아들을 데리고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테스트에서 메시의 재능을 확인한 바르셀로나는 유소년팀 합류와 치료 지원을 결정했다.
메시 영입 과정에서 나온 것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냅킨 계약'이다. 2000년 12월 당시 바르셀로나 스포츠 디렉터였던 카를레스 렉사흐는 식사 자리에서 냅킨에 메시를 영입하겠다는 약속을 적었다. 렉사흐와 호세프 밍게야, 호라시오 가졸리가 서명한 이 냅킨은 2024년 경매에서 76만2400파운드에 팔렸다.
가족 모두가 스페인 생활에 적응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 셀리아 쿠치티니와 형제들이 로사리오로 돌아간 뒤에도 호르헤는 어린 메시와 바르셀로나에 남았다.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던 메시가 흔들릴 때마다 아버지가 곁을 지켰다. 메시는 2007년 아르헨티나 라디오 인터뷰에서 바르셀로나 정착 초기 자신과 아버지가 서로에게 보이지 않게 울었던 때가 있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 선택 이후 메시의 축구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바르셀로나 유소년 시스템을 거쳐 1군에 올라선 메시는 발롱도르를 역대 최다인 8차례 받았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호르헤는 이 과정에서 아들의 에이전트를 맡아 바르셀로나와의 계약뿐 아니라 파리 생제르맹(PSG), 인터 마이애미 이적 협상을 담당했다. 초상권과 부동산·호텔·외식업 등 메시의 경기장 밖 사업도 관리했다.
선수 생활의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협상 테이블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반면 언론 노출은 많지 않았다. 계약이나 이적 등 메시의 거취를 둘러싸고 직접 대응해야 할 때를 제외하면 전면에 나서는 일을 피했다.
호르헤의 병세가 외부에 알려진 것은 올해 북중미 월드컵 기간이었다. 메시는 알제리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세 골을 넣으며 아르헨티나의 승리를 이끌었지만 경기 도중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그는 축구와 무관한 개인적인 이유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며칠 뒤 가족은 호르헤가 건강 문제로 치료받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도 구체적인 병명은 밝히지 않았다.
아르헨티나는 지난달 끝난 월드컵에서 준우승했다. 대회를 마친 메시는 아버지와 시간을 보낸 뒤 소속팀 인터 마이애미에 복귀했다.
호르헤 역시 젊은 시절 축구 선수의 꿈을 꿨다. 미드필더로 뛰며 뉴웰스 올드 보이스 유소년팀까지 올라갔지만 의무 군복무를 위해 선수 생활을 접었다. 이후 화학 기술자로 일했고 제철소에서도 근무했다. 자신은 프로 선수가 되지 못했지만 셋째 아들이 축구에 재능을 보이자 그의 길을 함께 걸었다.
바르셀로나는 호르헤의 별세 소식에 메시의 축구 인생 초창기를 구단에 맡겨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뉴웰스 올드 보이스도 아들의 커리어를 오랜 기간 뒷받침한 호르헤의 역할을 기리며 애도했다.
호르헤는 아내 셀리아와 아들 로드리고·마티아스·리오넬, 딸 마리아 솔을 남겼다. 13세 아들의 손을 잡고 로사리오를 떠났던 아버지와 메시의 20여년 동행도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