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이 러시아 내부 분열을 노린 전략적 메시지였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장기화된 전쟁에 지친 러시아 엘리트층을 겨냥한 심리전이라는 평가다.
지난 6일(현지 시간)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달 말부터 이 공개서한을 직접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측근들에 따르면 그는 서한의 표현 하나하나를 신중히 선택하며, 푸틴 대통령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도 압박할 수 있는 메시지를 고심했다.
우크라이나는 이 서한을 통해 자국의 군사적 역량을 과시하고 러시아의 군사·경제·도덕적 한계를 부각시키려 했다. 서한은 푸틴 대통령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 연설을 앞둔 지난 4일 발송됐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 GettyimagesKorea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그가 편지를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는 유럽 동맹국들도 이 서한 계획을 미리 알지 못했다고 전해졌다.
푸틴 대통령은 서한에 대해 "편지에 무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러시아의 목표를 충족하는 최종 합의가 나오기 전까지 두 정상 간 회담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르몽드는 우크라이나가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고 분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서한을 계기로 즉시 휴전에 나서거나 자신이 제안한 "정의롭고 존엄한 평화"에 동의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편지는 동시에 러시아 엘리트층과 국제 파트너들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며 "그들이 현 상황을 직시하고 전쟁 종식을 위해 압박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전달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한에서 4년째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의 약점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편지 발송 몇 시간 전에는 우크라이나군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향해 드론 공격을 감행해 장거리 타격 능력을 과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 gettyimagesBank
그는 러시아가 "북한의 도움 없이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러시아를 동맹국, 특히 중국에 의존하는 쇠퇴하는 강대국으로 묘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전쟁 피로감도 자극하려 했다. 정보기관 자료를 근거로 푸틴 대통령이 "2027~2028년까지 전쟁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주장하면서 러시아군의 막대한 인명 피해도 부각했다.
러시아 독립 매체 '노바야 가제타 유럽'의 키릴 마르티노프 편집장은 "젤렌스키의 편지가 엘리트층과 군 수뇌부 내부에 적지 않은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정치학자이자 '블라스트' 편집장인 파리다 루스타모바도 "사회적·정치적 피로감이 커지는 시점에 나온 적절한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는 푸틴 대통령이 종전 담판 제안을 거절하자 추가 공습을 실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엑스(X)에 "러시아 통치자는 계속 싸우려 한다"며 전날 밤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의 크론슈타트 해군 기지와 무기고, 크라스노다르 지역의 석유 저장소를 타격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