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전 9시. 모처럼 가족 나들이를 떠나기 위해 트렁크 가득 짐을 싣고 운전석에 오른 A씨가 센터 디스플레이를 향해 말을 건넨다.
"글레오, 뒷좌석 애들 춥지 않게 온도 좀 맞춰주고, 목적지까지 안 막히는 길로 안내해 줘. 출발하기 좋게 신나는 노래도 틀어주고."
예전 차량 음성 인식 시스템이었다면 이 말은 여러 번 쪼개서 다시 해야 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대자동차그룹
"에어컨 켜줘", "목적지 안내해 줘", "음악 틀어줘"처럼 정해진 명령어에 가깝게 말해야 했고, 문장이 조금만 길어져도 시스템은 사용자의 의도를 놓치곤 했다.
현대차그룹이 공개한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Pleos Connect)'는 바로 이 불편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플레오스 커넥트는 차량 안의 내비게이션, 공조, 미디어, 앱, 음성 인식 기능을 하나의 사용자 경험으로 묶는 현대차그룹의 차세대 차량용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다.
쉽게 말해, 운전자가 차 안에서 보고 듣고 조작하는 거의 모든 디지털 경험을 담당하는 '차량 속 스마트 허브'에 가깝다.
가장 큰 변화는 말귀를 알아듣는 방식이다.
현대자동차그룹
플레오스 커넥트에 탑재되는 LLM 기반 AI '글레오(Gleo AI)'는 사용자의 자연스러운 말을 이해하고, 한 문장 안에 섞인 여러 요청을 나눠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운전자가 온도 조절과 길 안내, 음악 재생을 한 번에 요청하면 시스템은 이를 각각 공조, 내비게이션, 미디어 기능으로 구분해 실행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중요한 건 기술 이름이 아니다. 차를 쓰는 방식이 얼마나 편해지느냐다.
아이를 태우고 이동할 때, 운전자가 화면을 여러 번 눌러 뒷좌석 온도를 조절하거나 앱을 찾느라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된다.
출발 전부터 주행 중까지, 필요한 기능을 말로 부르고 차가 알아서 반응하는 경험이 더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
주행 중 조수석 탑승자가 "햇빛이 뜨거운데 이쪽만 좀 시원하게 해줄래?"라고 말하는 상황도 가능해진다. 현대차그룹은 플레오스 커넥트가 실내 위치 인식 기술을 통해 발화자가 어느 좌석에 앉아 있는지 파악하고, 창문이나 공조, 시트 관련 기능을 좌석별로 제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단순히 명령어를 듣는 차에서, 탑승자의 위치와 상황을 함께 읽는 차로 진화하는 셈이다.
화면 구성도 소비자의 실제 사용성을 고려했다. 최근 전기차 업계에서는 버튼을 줄이고 모든 기능을 대형 터치스크린에 몰아넣는 흐름이 강하다.
보기에는 세련돼 보이지만, 운전 중 온도나 볼륨을 바꾸기 위해 화면을 여러 번 터치해야 한다면 불편은 물론 안전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플레오스 커넥트는 이 지점에서 현실적인 해법을 택했다. 대화면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앱과 주행 정보를 효율적으로 보여주되, 운전석 전방에는 핵심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별도 슬림 디스플레이를 배치했다.
공조, 시트 냉난방, 미디어 볼륨처럼 자주 쓰는 기능은 물리 버튼으로 남겨 직관적인 조작성을 유지했다. 첨단화의 속도보다 운전자가 실제로 편하고 안전하게 쓸 수 있는지가 우선이라는 판단이다.
현대자동차그룹
차가 멈춘 뒤의 경험도 달라진다. 목적지에 도착해 아이들이 차 안에서 잠시 쉬거나, 충전 중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중앙 화면은 단순한 내비게이션 화면이 아니라 콘텐츠와 생활형 앱을 실행하는 공간으로 바뀐다.
플레오스 커넥트는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OS 기반으로 앱 생태계를 확장해 유튜브, 스포티파이, 네이버 계열 서비스 등 다양한 차량용 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여기서 현대차그룹의 전략은 단순히 "차 안에서 앱을 많이 쓰게 하겠다"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자체 앱 마켓과 개발자용 도구, 차량 API를 제공하는 '플레오스 플레이그라운드(Pleos Playground)'를 통해 외부 개발자들이 차량 환경에 맞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생태계를 키우겠다는 구상도 담겨 있다.
이는 자동차 회사가 앞으로 무엇으로 경쟁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과거에는 엔진 성능, 연비, 승차감, 디자인이 브랜드의 실력을 가르는 핵심이었다. 전기차 시대에는 여기에 배터리 효율과 충전 성능이 더해졌다.
유튜브 ' 현대자동차그룹(HYUNDAI)'
하지만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이른바 SDV 시대에는 차 안에서 어떤 서비스를 쓸 수 있는지, 음성 인식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이 얼마나 개선되는지가 새로운 경쟁력이 된다.
무엇보다 플레오스 커넥트가 소비자에게 의미 있는 이유는 '미래차 기술'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일상 속 편의로 바꾸려 한다는 점이다.
운전자는 복잡한 메뉴를 덜 누르고, 탑승자는 각자의 좌석에서 필요한 기능을 더 쉽게 요청하며, 가족은 이동 시간과 대기 시간을 콘텐츠와 휴식의 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
물론 아직 과제도 남아 있다. LLM 기반 음성 인식이 실제 도로 환경의 소음, 다양한 억양, 가족 간 대화가 뒤섞인 상황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작동할지는 양산차에서 검증돼야 한다.
앱 생태계 역시 단순히 많은 앱을 넣는 것보다, 차량 안에서 안전하고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서비스 중심으로 다듬어져야 한다.
유튜브 ' 현대자동차그룹(HYUNDAI)'
그럼에도 플레오스 커넥트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동차는 더 이상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기계에 그치지 않는다. 가족의 대화, 음악, 길 안내, 실내 온도, 콘텐츠 소비까지 하나로 이어주는 생활 플랫폼으로 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플레오스 커넥트는 그 전환의 출발선에 놓인 시스템이다.
소비자가 체감할 변화는 의외로 단순하다. 차에게 더 자연스럽게 말하고, 차 안에서 더 편하게 쉬고, 이동 시간을 더 알차게 쓰는 것. 미래차의 경쟁력은 결국 이런 일상의 작은 편의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