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그룹을 보는 시장의 잣대가 바뀌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전선과 전력기기는 성장성이 낮은 이른바 '굴뚝산업'으로 묶였다. 중국산 저가 제품 공세와 내수형 산업이라는 인식도 강했다. 그러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 이후 LS의 기존 사업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지난 26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집계에 따르면 LS그룹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26조원에서 이달 24일 57조원으로 늘었다. 불과 4개월 만에 두 배 이상 커졌다. 그룹 시총 순위도 17위에서 10위로 일곱 계단 올랐다. 같은 기간 플랫폼 기업의 성장 프리미엄이 약해진 사이, LS는 주요 그룹 시총 10위권에 안착했다.
출발점은 LS전선이다. LS전선은 지난달 30일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7조5882억원, 영업이익 2798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대비 매출은 12.2%, 영업이익은 1.9% 증가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치다. 2025년 12월 말 기준 수주잔액은 2024년 말 대비 22% 증가한 7조6300억원으로 집계됐다.
사진제공=LS그룹
초고압 케이블과 해저케이블 수요가 실적을 밀어 올렸다. 해상풍력, 장거리 송전,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동시에 커지면서 전선은 단순 자재보다 국가 전력망을 잇는 핵심 설비에 가까워졌다. 전력망 투자가 늘어날수록 케이블의 사양은 높아지고, 납기와 시공 역량을 갖춘 업체의 협상력도 커진다.
LS일렉트릭은 AI 데이터센터 수요를 실적으로 먼저 확인시킨 계열사다. LS일렉트릭이 지난 21일 밝힌 2026년 1분기 연결 기준 실적은 매출 1조3766억원, 영업이익 1266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3%, 45% 늘었다. 북미 매출은 약 3000억원으로 전년보다 80% 증가했고, 초고압 변압기 매출도 83% 늘었다.
수주잔고도 늘었다. LS일렉트릭의 1분기 수주잔고는 5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말 5조원보다 약 6000억원 증가했다. 이 가운데 초고압 변압기 수주잔고가 3조1000억원을 차지했다. 부산 초고압 변압기 2생산동이 본격 가동되면서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은 기존 2000억원에서 6000억원으로 확대됐다.
AI 데이터센터 투자는 반도체와 서버 투자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규모 전력을 끌어오는 송전망, 전압을 바꾸는 변압기, 내부 전력을 나누는 배전반, 순간 부하에 대응하는 저장장치, 전력 효율을 높이는 직류 배전 솔루션이 함께 필요하다. LS전선과 LS일렉트릭의 실적 개선은 이 수요가 이미 발주와 매출로 옮겨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LS의 강점은 전력망 수요를 한 계열사 실적으로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LS전선은 초고압·해저케이블을 맡고, LS일렉트릭은 변압기·수배전반·ESS·직류 배전 솔루션을 공급한다. LS마린솔루션은 해저케이블 시공을 담당한다. LS에코에너지는 아세안 지역 전력 인프라 수요를 흡수하는 축으로 붙어 있다. 전력망 투자가 늘어날수록 그룹 안 여러 계열사의 사업 기회가 함께 넓어진다.
구자은 LS그룹 회장 / 뉴스1
소재와 저장장치도 보조축으로 들어온다. LS그룹은 올해 인터배터리 2026에서 ESS, 직류 전력 솔루션, AI 데이터센터, 배터리 소재, 전기차, 스마트팩토리를 6개 전시 테마로 제시했다. LS MnM은 원료 확보부터 제품 생산까지 이어지는 배터리 소재 공급망을 내세웠다. 인도네시아 니켈제련소 투자와 온산국가산업단지 배터리소재 공장의 4분기 양산 계획도 공개했다. LS머트리얼즈는 AI 데이터센터의 피크 전력 문제에 대응하는 울트라캐퍼시터를 소개했다. LS일렉트릭은 올인원 ESS 플랫폼과 직류 배전 핵심 장비를 전면에 배치했다. 다만 이들 사업은 아직 LS전선·LS일렉트릭처럼 실적 숫자로 전면에 세울 단계는 아니다.
구자은 LS그룹 회장이 2023년 선포한 "비전 2030"도 최근 전력망 투자 흐름과 맞물린다. LS그룹은 당시 구 회장이 "CFE(Carbon Free Electricity·탄소 배출이 없는 전력)와 미래산업을 선도하는 핵심 파트너"를 선언했다고 밝혔다.
구 회장은 2030년 자산 50조원, 8년간 20조원 이상 투자 계획과 함께 송·배전 솔루션, 데이터 기반 플랫폼, 2차전지 소재, 전기차 부품·솔루션을 신성장 분야로 꼽았다. 최근 LS전선의 초고압·해저케이블 수주와 LS일렉트릭의 북미 데이터센터 전력설비 매출 증가는 이 가운데 송·배전과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영역이 먼저 실적으로 나타난 사례다. 2차전지 소재와 전기차 부품은 아직 그룹 전체 실적을 이끄는 축으로 보기는 이르지만, 전력망 투자와 전기화 흐름이 길어질수록 보조 사업으로 붙을 여지는 남아 있다.
관건은 수주잔고가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이어지느냐다. 북미 데이터센터 투자와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장기화되면 LS전선과 LS일렉트릭의 실적 가시성은 높아진다. 반대로 주요 업체의 증설이 빨라지고 공급이 한꺼번에 늘면 현재의 주가 프리미엄은 다시 검증대에 오른다. LS그룹 시총 10위 진입 이후 시장이 확인할 숫자는 추가 수주만이 아니다. 수익성, 현금흐름, 납기 대응력이 다음 평가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