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지구 난민촌의 모래바람 날리는 좁은 길 위로 네 명의 아이들이 엄숙한 행진을 이어간다. 아이들이 정성스레 나무판 위에 실어 나르는 것은 시신 역할을 하는 작은 인형이다.
최근 SNS를 통해 확산되며 전 세계인에게 충격을 안긴 이 영상은 가자지구 어린이들이 처한 참혹한 정신적 외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상 속 아이들은 섬뜩할 정도로 정확하게 장례 의식을 재현한다. 인형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며 조문객처럼 행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이는 슬픔을 이겨내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장례식 놀이를 하는 가자 지구 아이들 / 알자지라
지난 23일(현지 시간) 중국 신화통신은 가자지구 아이들을 직접 만났다. 10살 소년 사이드 알 아슈카르(10)와 동생 라미(9), 하딜 하산(8), 누르 가산(7)이 그 주인공이다.
사이드는 15개월 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동생을 잃었다. 큰 충격에 사이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소년에게 이 인형은 죽은 동생을 대신하는 존재이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쏟아내는 유일한 통로다. 아이의 어머니 아미나 알 아슈카르는 아들이 밤마다 깨어 울고 인형을 동생처럼 껴안으며 시간을 보낸다고 전했다.
아미나는 "최근 화제가 된 영상은 이웃이 촬영한 것으로, 가족의 동의 없이 공유됐다"며 "해외에 있는 친척들이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을 때야 영상이 퍼져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2023년 10월 7일 시작된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으로 가자 지구에서는 수만 명이 숨지고 많은 주민들이 피난민이 됐다.
전쟁이 일상이 된 가자지구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비극을 놀이의 형태로 되풀이하고 있다.
북부 셰이크 라드완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맨발로 폐허 더미위를 뛰어다닌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가 나무를 깎아 만든 장난감 총을 들고 있고, 또 다른 아이들은 '유대인과 아랍인 놀이'를 한다. '아랍인' 역할인 아이들은 숨었다가 도망치고, '유대인' 역할을 하는 아이들은 아랍인 아이들을 잡기 위해 쫓아간다.
13살 소년 모하메드 알 마드훈은 이러한 놀이들이 잠시나마 두려움을 잊게 해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년의 어머니 아비르는 재현 놀이가 아이들에게 일시적인 위안을 줄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전쟁의 공포를 끊임없이 재경험하게 하면서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 파델 아슈르는 신화통신에 "가자지구 아이들 대부분이 수면 장애와 지속적인 불안감 등 심각한 트라우마 증상을 보이고 있다"며 "전투가 끝난 뒤에도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피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2025년 7월 2일(현지 시간) 가자지구에서 이송된 팔레스타인 환자들이 요르단 암만의 이스라엘 국경에서 다른 소아 환자들과 합류하고 있다. / GettyimagesKorea
식량과 물조차 구하기 힘든 극한의 상황 속에서 아이들의 멍든 마음을 돌볼 손길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학교는 무너지고 놀이터는 폐허가 된 가자지구에서 아이들은 이제 눈에 보이는 죽음의 의식을 따라 하며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가장 천진난만해야 할 어린 시절이 무덤의 의식으로 대체된 현실은 가자지구 세대가 짊어진 비극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