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HD현대 회장이 전면에 내세운 안전 경영이 조선 현장에서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잠수함 정비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협력업체 소속 60대 여성 노동자 1명이 숨지면서, 그룹 차원에서 강조해 온 '중대재해 제로'와 대규모 안전투자가 실제 현장에 얼마나 스며들었는지 다시 따져보게 됐다.
사고는 4월 9일 울산조선소에서 창정비 중이던 해군 214급 잠수함에서 발생했다. HD현대중공업은 이튿날 중대재해 발생 정정 공시를 내고, 화재 당시 고립됐던 근로자를 기존 부상자에서 사망자로 정정했다. 이후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 고용노동부 등이 합동감식에 착수했다.
HD현대중공업
회사는 사고 엿새 뒤인 4월 15일 전 공장 생산을 하루 중단하고 특별안전교육을 실시했다. 한국거래소 공시에 따르면 생산중단 사유는 '중대(성)사고 근절을 위한 특별안전교육 실시'였고, 잠수함 관련 부분작업 중지명령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공정은 4월 16일부터 재개했다.
정 회장은 불과 몇 달 전까지 그룹 차원의 안전 메시지를 전면에 세웠다. 정 회장은 2025년 9월, 전 계열사 현장 안전점검 당시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며 "회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임직원의 생명을 최우선에 두겠다"고 밝혔다. "전 사업장에서 중대재해를 제로로 만들 때까지 현장 중심의 경영을 이어가 달라"고 주문했다.
당시 회사는 조선 부문에 2030년까지 5년간 약 3조5천억원 규모의 안전 예산을 투입하고, 안전보건 경영체계 '더 세이프 케어'를 전 계열사로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HD현대는 지난해 12월에도 안전 메시지를 거듭 전면에 세웠다. 회사는 Safety Forum에서 '모두가 안전한 작업장, 안전이 브랜드가 되는 회사'를 새 안전 비전으로 공표했고, 정 회장과 각 사 경영진, 안전최고담당자들이 참석했다. 회사는 이 자리에서 지난 9월 발표한 2030년까지 5년간 총 4조5천억원 규모의 안전 예산 투입 계획을 다시 언급하며 '안전 최우선' 경영을 강조했다. 조선 부문 3조5천억원과 그룹 총액 4조5천억원은 범위가 다른 수치다.
사진제공=HD현대
정 회장을 이번 사안에 연결할 근거는 단순한 메시지 차원을 넘는다. HD한국조선해양 이사회 운영현황에 따르면 2024년 2월 6일 이사회는 '24년 안전·보건 경영계획 승인의 건'을 원안 가결했고, 정 회장도 찬성했다.
다만 이번 사고를 곧바로 정 회장의 직접 책임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공개된 회사 안전정책상 전사 안전보건 총괄은 대표이사인 최고안전책임자(CSO)로 적시돼 있다. 그렇다고 정 회장을 완전히 비켜 세우기도 어렵다. 정 회장이 직접 '중대재해 제로'를 내걸고, 조선 부문 3조5천억원 규모의 안전 예산과 그룹 차원의 새 안전 비전까지 전면에 세운 뒤에도, 잠수함 정비 현장에서 협력업체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기선 HD현대 회장 / 사진제공=HD현대
정 회장이 직접 띄운 안전 경영이 잠수함 정비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못했다. 향후 쟁점은 HD현대가 전면에 내건 안전 경영이 잠수함 정비 같은 고위험 작업 현장에 어떻게 적용돼 왔는지, 그리고 그 체계가 사고 당시 실제로 작동했는지로 모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