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한미약품이 창립 53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 인사를 대표이사에 선임했다. 내부 승진 중심의 기존 관행을 깨고 황상연 HB인베스트먼트 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제약·바이오 기업은 연구개발(R&D)과 장기 파이프라인이 핵심 경쟁력인 만큼, 통상적으로는 경영의 연속성을 중시한다.
특히 실적이 상승 흐름에 있을 때는 안정적인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한미약품이 이례적인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경영권 분쟁이라는 변수가 자리하고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된 이미지
앞서 한미약품은 고(故) 임성기 회장 유족 간 경영권 갈등을 겪었다. 모녀 측(송영숙·임주현)은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등과 '4자 연합'을 구성해 우호 지분을 확보했고, 형제 측(임종윤·임종훈)은 이에 맞서며 표 대결 구도를 형성했다.
이후 모녀 측이 우위를 점하는 듯했지만, 최근 연합 내부 갈등이 불거지면서 분쟁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특히 사내 이슈를 계기로 대표이사 재선임이 무산되는 등 경영진 교체가 발생하면서, 갈등이 지배구조를 넘어 경영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현재 주요 주주 간 소송까지 진행되며 불확실성은 이어지고 있다.

한미약품 박재현(왼쪽) 전 대표이사와 신동국(오른쪽) 한양정밀 회장 / 사진 제공 = 한미약품, 한양정밀
이 같은 상황에서 한미약품은 갈등 해소보다 차단을 택했다. 외부 인사를 대표로 선임해 경영과 지배구조 이슈를 분리하고, 경영권 분쟁이 실적과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다. 다시 말해 내부 갈등을 기업 운영 바깥으로 밀어내는 '격리 전략'을 택한 셈이다.
시장에서는 경영권 분쟁 자체보다, 그 장기화로 인한 기업가치 훼손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다. 의사결정 지연, 연구개발 차질, 조직 내 혼선 등이 현실화될 경우, 회사의 성장 흐름이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약 기업의 특성상 현재 실적보다 미래 파이프라인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만큼, 불확실성 관리는 더욱 중요하다.
사진 = 인사이트
이 때문에 황상연 신임 대표의 최우선 과제는 '변화'가 아닌 '유지'에 가깝다. 기존 사업과 R&D 파이프라인을 계획대로 이어가고, 실적 흐름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시장에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다.
동시에 메시지 관리와 조직 안정화를 통해 경영권 갈등이 외부에서 체감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로 꼽힌다.
현재 한미약품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기업의 성장 흐름이 경영권 분쟁이라는 이슈에 가로막히는 순간이다.
장기 전략 설계보다 시간을 확보하고 충돌을 완화하는 '완충지대'가 절실했던 만큼, 한미약품이 선택한 황상연 리더십은 변화보다 '유지'에 방점을 찍고 기존 성과를 흔들림 없이 이어갈 수 있는 구조적 장치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