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재킷을 입고 무대에 오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등 뒤로 푸른색 제네시스 G70이 등장했다.
황 CEO는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 행사 'GTC 2026' 기조연설에서 "이제 자율주행의 '챗GPT 순간'이 도래했다"며 현대자동차그룹과의 강력한 연대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17일 현대차·기아는 엔비디아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의 전략적 협력을 대폭 확대한다고 밝혔다.
유튜브 'NVIDIA'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춤했던 자율주행 개발에 가속 페달을 밟고, 업계 선두 주자인 테슬라 추격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승부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깐부회동', 1월 CES 2026에서의 만남 등이 빛을 발하고 있다.
'데이터 파편화' 한계 넘는다… 테슬라식 단일 파이프라인 구축
이번 협력 확대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데이터 대통합'이다.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현대차, 기아를 비롯해 포티투닷, 모셔널, 현대오토에버, 현대글로비스 등 각 계열사에서 방대한 도로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지난해 10월 30일 깐부회동 당시 기념 촬영하는 이재용·젠슨 황·정의선 / 뉴스1
하지만 데이터의 사양과 수집 기준이 제각각이어서 이를 통합해 활용하는 데 효율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었다. 국내 차량 데이터셋과 모셔널 등이 보유한 라이다(LiDAR) 기반 데이터가 호환되지 않는 현상도 발생했다.
현대차그룹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엔비디아의 AI 기술을 적극 활용, 전 그룹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하나의 학습 파이프라인으로 묶는다.
이는 테슬라가 모든 차량의 데이터를 단일 시스템에서 중앙 집중식으로 관리하고 학습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박민우 현대차 첨단차 플랫폼(AVP) 본부장 겸 포티투닷 사장 역시 취임 직후 "현대차그룹, 포티투닷, 모셔널이 사용하는 자율주행 데이터 수집·학습·추론 기준을 엔비디아 방식으로 통합해 테슬라를 추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하이페리온' 기반 SDV 뼈대 완성… 데이터 균질성 확보
엔비디아
데이터 대통합을 기술적으로 실현할 무기는 엔비디아의 '드라이브 하이페리온(NVIDIA DRIVE HYPERION)'이다.
하이페리온은 고성능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센서, 카메라 등을 하나로 묶은 자율주행용 표준 설계 구조(레퍼런스 아키텍처)다.
현대차그룹은 자체 개발해 온 전기·전자(E&E) 아키텍처에 하이페리온을 탑재해 SDV의 뼈대를 고도화한다.
이를 통해 ▶영상·언어·행동 등 각종 데이터 수집 ▶AI 학습 및 성능 향상 ▶실제 차량 적용 ▶데이터 품질 향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데이터 선순환 체계'가 완성될 전망이다.
단순 종속은 없다… '기술 내재화' 거쳐 레벨 4 로보택시 정조준
주목할 점은 현대차그룹이 엔비디아의 솔루션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전기차인 아이오닉5 로보택시 / 현대차그룹
엔비디아의 비전-언어-행동(VLA) 기반 자율주행 모델 '알파마요(Alpamayo)' 등을 그대로 탑재하기보다는, 이를 밑거름 삼아 최고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자사 환경에 맞게 '내재화'하겠다는 확고한 방침을 세웠다.
이러한 독자적 역량 강화를 바탕으로 중장기적으로는 레벨 4 수준의 로보택시 상용화까지 협력 체계를 확장한다.
미국에 본사를 둔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을 중심으로 로보택시 기술 고도화를 위한 전방위적 협의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김흥수 현대차그룹 글로벌전략조직(GSO) 담당 부사장은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 확대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기 위한 중요한 모멘텀"이라며 "레벨 2 이상의 자율주행 기술부터 레벨 4 로보택시 서비스까지 차별화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